성장 5 - 속도보다 방향

by 강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착각해서 반대로 탔다. 분명히 난 가려던 방향으로 잘 탔다고 생각했는데, 30분쯤 지나 표지판을 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더 빨리, 더 멀리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날 배운 건 간단했다. 속도는 위로가 되지만, 방향만이 구원이 된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예수를 믿는 삶도 대단한 페이스를 내는 경주라기보다 누구를 따르느냐의 문제다. 제자도는 속도의 자랑이 아니라 발걸음의 정렬이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 질문이 매일의 나침반이 된다.


물론 우리는 속도에 중독되기 쉽다. 성과표, 체크리스트, 남들보다 빨리. “속도”라고 할 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얼마나 빨리 가는지, 다른 하나는 어디로 가는지까지 포함한 빠르기다. 신앙의 성장은 두 번째여야 한다. 예배와 봉사가 늘고, 성경을 더 많이 읽어도 방향이 없으면 러닝머신 위에서만 뛰는 것과 같다. 숨은 차지만, 자리는 그대로다.

반대로 속도가 조금 느려도 방향이 분명하면 산을 오르듯 한 걸음씩 높아진다. 복음의 방향, 사랑의 방향, 겸손의 방향 - 그쪽을 향해 가고 있는가? 신앙의 힘은 “얼마나 많이 했나”보다 “어디를 향하나”에서 생긴다. 하나님을 향한 작은 1이, 엉뚱한 곳으로의 큰 10보다 낫다.


행동과학도 비슷한 힌트를 준다. 아옐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는 ‘진행상황을 자주 점검’할수록 목표 지속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점검은 속도를 재는 행위가 아니라 방향을 수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속도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방향 점검은 길을 되찾게 한다.


신앙의 전통은 오래전부터 이 방향 수정을 일상의 리듬으로 엮어 두었다. 아침 기도는 그날의 북극성을 맞추는 시간이고, 말씀 묵상은 길 위의 이정표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약속은, 길을 잃지 않도록 그분을 인정하는 습관 속에서 빛난다. 어거스틴이 말한 “우리 마음은 주 안에서 쉬기까지 불안하다”는 고백은, 목적 없는 질주가 결국 피로로 끝난다는 사실을 신학의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속도에 흔들린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이면 하나님도 빨라진 듯 착각하고, 지체되는 날이면 신앙까지 뒤처지는 것처럼 느낀다. 그럴 때마다 해 온 작은 의식을 다시 꺼낸다. 운전할 때처럼 - 가던 길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다시 쳐다보고, 브레이크를 밟고, 방향을 확인한다. 오늘은 어디로 가는가? 내가 서 있는 좌표는 어디인가? 내 야망이 핸들을 잡았는가, 아니면 주님이 길을 이끄시는가?


철학자의 말로 바꾸면 이렇다. 삶은 ‘무엇을 성취했는가’의 목록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움직였는가’의 이야기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말한 의미는 결과의 보상이 아니라 방향의 이름이다. 의미가 분명할 때 사람은 더디어도 버틴다. 의미가 흐려질 때 사람은 빨라도 지친다.


그러니 오늘은 속도를 줄여도 좋다. 대신 방향을 분명히 하자.

내비게이션을 다시 찍듯, 이렇게 짧게 기도하자.

“범사에 주님을 인정합니다. 제 길을 인도하소서.”

그 한 문장이 방향을 바꾼다. 방향이 바뀌면 속도는 따라온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볼 때 안다.

빨랐던 날보다 올바르게 걸었던 날이 나를 더 멀리 데려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