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나는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린도전서 6:12)
한동안 나는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다. “이것만 도와 달라”, “한 번만 더 맡아 달라”는 말이 오면 자동으로 "예"가 튀어나왔다. 달력은 빼곡해졌고, 마음은 점점 비좁아졌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는데도 사랑은 얇아지고 짜증은 두꺼워졌다. 어느 밤, 늦게까지 봉사하고 돌아오며 깨달았다. 이것은 예배가 아니라 인정의 탐닉일 수 있다는 것을.
복음서는 경계를 분명히 두신 예수님을 보여준다. 가버나움에서 사람들이 더 붙잡으려 할 때 예수님은 이른 새벽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고, “다른 마을로 가자”라고 길을 바꾸신다(마가복음 1:35–38). 병든 자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모두에게 예’가 곧 ‘아버지께 예’는 아니었다. 제자들이 급해할 때 예수님은 광야로 물러나셨고(누가복음 5:16), 사람들의 환호가 왕으로 세우려 할 때 그 자리를 떠나셨다. 거룩한 ‘아니오’가 사명을 지켰다.
심리학도 이 질서를 받쳐 준다. 소피 르루아(Sophie Leroy)의 "주의 잔여(attention residue)" 연구는 ‘너무 많은 예’가 남기는 찌꺼기를 보여 준다. 이전 일에 붙어 있던 주의가 다음 순간으로 흘러 들어와, 어디에서도 온전히 머물지 못하게 만든다. 반대로 "목표-차폐(goal shielding)" 연구(샤 P. Shah, 프리드먼 R. Friedman, 크루글란스키 Arie W. Kruglanski)는 한 가지 목표에 분명히 헌신할수록 뇌가 경쟁 목표의 유혹을 스스로 낮춘다고 말한다. 하나의 정직한 “예”가 여러 “아니오”를 덜 아프게 만든다.
신학의 언어로 옮기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말한 “오르도 카리타티스(ordo caritatis, 사랑의 질서)”다. 가장 큰 사랑을 첫자리에 두기 위해 덜 중요한 사랑들을 뒤로 미룬다. 베네딕트 규칙의 “오라 에트 라보라(ora et labora)”가 가르치듯, 멈춤과 헌신의 리듬이 경계를 세우고 사랑을 지킨다. 그래서 ‘아니오’는 거절의 기술이 아니라 큰 사랑을 지키기 위한 예배의 형태다.
철학자 죠세프 파이퍼(Josef Pieper)는 “여가(레저)가 문화의 토대”라고 했다. 여가는 게으름이 아니라, 선을 관조하고 의미를 숙성시키는 시간이다. 신앙으로 옮기면 안식일이다. 하나님이 ‘쉼’을 계명으로 주신 것은, 인간에게도 멈춤이라는 경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주에 하루의 ‘아니오’가 나머지 여섯 날의 ‘예’를 건강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배운 것도 있다. 한 주에 만남을 네 번 잡으면, 기도는 종종 자리만 지킨다. 그러나 두 번으로 줄이고, 나머지 저녁을 말씀 앞에 비워 두면, 해야 할 말이 줄어들고 들어야 할 말이 늘어난다. ‘덜 바빠서’가 아니다. 무엇을 위해 바쁜지를 정했기 때문이다.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는 상처를 내지 않는다.
이 원리는 관계에도 미묘하게 스민다. 모든 부탁에 “예”라 답하는 사람은 잠깐은 편하고 칭찬도 듣지만, 오래 가면 신뢰가 줄어든다. 정직하게 “이번에는 어렵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때로 미안함을 사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의 ‘예’가 믿을 만해진다. 하나님과의 사이도 그렇다. 피곤과 분주 속에서도 드린 ‘티끌만 한 기도’가 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 일상을 통째로 써서 “주님, 저는 이 방향으로 살겠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하는 예배가 있을 때, 작은 기도와 작은 섬김이 제자리를 찾는다.
현실로 내려오면, 경계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다. 새벽을 비워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 가족 식사 시간에는 폰을 뒤집어 놓는 습관. 회의가 끝나기 전 5분을 침묵으로 남겨 마음을 정리하는 작은 의식. 요청이 오면 바로 대답하지 않고 “기도하며 확인해 보겠다”로 시작하는 성급하지 않은 결정. “만약 일정이 꽉 차 있으면, 정중히 미루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런 작은 설계들이 사랑을 지킨다.
무엇보다 ‘아니오’는 사람을 거절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서 말투도 달라진다. “싫어요”가 아니라 “지금은 어렵지만,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때에 정성과 함께 돕고 싶어요.” 진실한 경계는 관계를 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성숙하게 한다.
오늘은 이렇게 연습하고 싶다.
한 번 덜 맡고, 한 번 더 깊이.
한 번 덜 대답하고, 한 번 더 기도.
달력에 먼저 하나님과 가족의 시간을 적고, 그 나머지를 나눠 준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조용히 고백한다.
“주님, 나의 ‘아니오’가 차갑지 않게 하시고, 나의 ‘예’가 얇아지지 않게 하소서.
가장 큰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작지만 거룩한 경계를 세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