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7 - 힘을 길들이는 연습, 온유

by 강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5)


온유는 약함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prautēs)"는 힘이 없어서 맞고만 있는 상태가 아니다. 방향을 얻은 힘, 길들여진 힘, 사랑을 위해 스스로 조절된 힘이다. 성장의 한가운데에 이 온유가 있다. 더 세지는 법만 배우면 관계는 부서지고, 더 착해지는 법만 배우면 진실이 무너진다. 복음은 “더 강하게”“더 착하게”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낸다. 힘을 사랑에 맡기는 법, 그게 온유다.


나는 내 의견이 옳다고 확신할 때 목소리가 커지는 편이었다. 실제로 맞는 말을 했을지 몰라도, 맞는 방식으로 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바울의 권면이 마음에 걸렸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 성령이 자라게 하는 삶의 모양 가운데 ‘온유’‘절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기는 말’ 대신 ‘살리는 말’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말의 결을 낮추고, 속도를 늦추고, 중간에 한 번 멈추는 작은 습관들. 놀랍게도 내용은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관계가 달라졌다. 힘을 끄집어내기보다 돌려세우는 힘이 생겼다. 온유는 그렇게 자란다.


심리학은 이 길을 “자기조절(self-regulation)”이라 부른다.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해 지금의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배치하는 기술. 아이들의 삶을 길게 추적한 연구들에서, 순간의 만족을 미루고 주의를 전환할 줄 아는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더 안정적인 관계와 성취를 보였다. 철학으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의 길 - 과도함과 결핍 사이의 ‘한가운데’ - 가 바로 그런 배치다. 과한 분노도 문제지만, 필요한 자리에서 분노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온유는 그 중간,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단호함을 품는다.


현장에서 배운 장면들이 있다. 회의에서 내 제안을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이 올라올 때, 노트 구석에 짧게 적는다. “왜 지금? 누구를 위해?” 이 두 줄이 내 힘의 방향을 고쳐 준다. 아이가 숙제를 질질 끌 때, 잔소리 대신 의자를 옆으로 조금만 당긴다. “아빠도 여기 앉아 있을게. 뭐부터 시작하고 싶어?” 통제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힘이 더 오래간다. 운전할 때 끼어드는 차를 볼 때마다, 속으로 기도 한 줄을 짧게 꺼낸다. “주님, 제 속도를 낮추게 하소서.” 내 속도가 낮아질 때 시야가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질 때 마음이 넓어진다.


온유는 결심이 아니라 리듬으로 자란다. 거칠어지기 쉬운 시간을 알아두고, 그 시간을 위한 작은 의식을 마련한다. 아침에는 말씀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고, 낮에는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밤에는 오늘의 과한 말 한마디를 떠올려 조용히 회개한다. 이렇게 하루의 고비마다 미세한 브레이크를 심어 두면, 힘이 새는 곳이 줄어든다. 신앙은 이 리듬을 ‘훈련’이라 부르고, 훈련은 다시 믿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무릎을 꿇는 자세가 마음의 어휘를 바꾼다. 손을 낮추면 말이 낮아지고, 말이 낮아지면 상대가 높아진다. 신앙의 성장은 결국 방향의 문제다. 더 빨라지려 애쓰기보다, 주님의 마음 쪽으로 방향을 잡는 일. 그 방향이 잡히면 속도는 자연히 따라온다.


오늘의 기도는 단순해도 충분하다.

“주님, 제 힘을 거두지 마시되, 제 힘을 길들여 주소서. 분노할 자리와 인내할 자리를 분별하게 하시고, 진실을 향하되, 사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온유는 약함이 아니다. 온유는 사랑을 지키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주께서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