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8 - 수치심을 벗기

by 강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실수한 날은 집이 작아진다. 문고리를 조용히 돌리고 들어와도, 벽이 내 쪽으로 좁아지는 느낌. 그날도 그랬다. 말로 사람을 살리겠다던 내가, 감정이 앞서 휘두른 한 문장으로 누군가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집에 와서 씻고 나니 비누 냄새 위로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여기서 갈림길이 열린다. “그 말은 잘못이었어”와 “난 못돼먹었어” 사이의 얇은 선. 전자는 죄책감이고, 후자는 수치심이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간명하게 구분했다. 죄책감은 “내가 잘못했다(I did something bad)”고 말하고, 수치심은 “나는 형편없다(I am bad)”고 속삭인다. 죄책감은 행동을 돌이키게 하는 연료가 될 수 있지만, 수치심은 사람을 굳게 만든다. 숨게 하고, 변명하게 하고, 다시 상처 주게 한다. 신앙의 언어로도 비슷하다. 죄책감은 회개의 문으로 이어지고, 수치심은 정죄의 감옥으로 이어진다. 복음은 전자를 부르고, 사단은 후자를 속삭인다.


샤워실에서 나온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순서를 따라 보기로 했다.

먼저 사실을 말한다. “그 말은 과했어.” 변명을 붙이지 않는다. “근데 솔직히 너도…” 같은 반창고를 떼어낸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말한다. “주님, 제 입술을 씻어 주세요.” 그리고 사람에게 말한다. “아까 내 말이 상처였지. 미안해.”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넌 형편없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 했던 말에서 넘어진 사람이야. 내일 같은 자리에서 잠시 멈춰 보자.”

이 간단한 독백이 수치심의 칠흑을 조금씩 벗겼다. 회개는 죄책감을 정직하게 지나가 관계로 돌아가는 길이고, 수치심은 나를 나 자신에게서 차단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죄책감을 사용해 우리를 품으로 이끄시지만, 수치심은 그 품으로 가는 발걸음을 얼려 버린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십자가의 선포는 방종의 면허가 아니라, 다시 걸을 수 있는 출구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인간을 “해석하는 존재”라고 불렀다. 우리는 사건을 그냥 겪지 않는다. 뜻을 붙인다. 같은 실패도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로 읽힌다. “나는 늘 이런 인간이야”라는 수치의 서사, 그리고 “오늘의 넘어진 지점이 내일의 배움이다”라는 소망의 서사.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유 같지만, 사실은 신학이다. 하나님 어떤 성품 아래에서 내가 살고 있는가의 문제다. 저울과 잣대를 드신 하나님인가, 상처 난 손바닥을 내미시는 하나님인가.


심리학의 관찰도 이를 돕는다. 감정조절 연구에서 말하는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는 감정의 물줄기를 거꾸로 틀어 준다. 같은 일을 다른 말로 붙이는 훈련. “망했다” 대신 “배울 기회가 생겼다”라고 이름 붙이는 작은 언어의 전환. 성경은 오래전부터 이 재평가의 길을 가르쳤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는 약속은 감정을 거짓으로 덮으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로 다시 읽으라는 초대다.


나는 아직도 종종 수치심의 목소리를 듣는다. “넌 글 쓸 자격 없어.” “목소리만 컸지, 변화는 없잖아.” 그럴 때면 바울을 따라 아주 실무적으로 처리한다. 사실을 인정하면, “오늘은 그렇다.” 소망을 연결하면, “그러나 주 안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전 15:58)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내일은 같은 자리에서 한 번 멈추고 말해보자.”


언젠가 아이가 시험에서 크게 망치고 돌아와서 고개를 숙였다. “아빠, 나 바보 같아.” 그 말이 내 안의 오래된 수치의 문장을 건드렸다. 그날은 아이에게 설교를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옆에 앉아 종이를 꺼내 문제 하나를 다시 풀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우린 틀렸다가 배우는 사람들이야.” 아이의 어깨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수치심은 고독에서 자라고, 은혜는 곁에 머물면서 자란다.


오늘, 혹시 마음에 오래 붙어 있던 딱지가 있다면 이렇게 기도해 보자.

“주님, 사실을 직면할 용기를 주시고, 수치를 벗길 은혜를 주세요. 정죄의 문구들을 끊어 내고, 회개의 길로 걸어가게 해 주세요. 제가 한 일을 바꾸게 하시되, 제가 누구인지는 주님의 말씀으로만 정의되게 해 주세요.”

성장은 더 완벽해지는 길이 아니다. 더 깊이 사랑받는 자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 사랑이 죄책감은 통과시키고, 수치심은 벗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집이 다시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