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돈과 사명의 거리: 청지기의 예산

by 강훈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21)


지갑은 지도를 닮았다. 내가 사랑하는 곳을 조용히 가리킨다. “청지기(oikonomos)”라는 말의 뿌리는 집을 뜻하는 oikos와 다스림을 뜻하는 nomos다. 그리고 “예산”의 영어 뿌리도 같은 집에서 나온다. Economy의 어원 “오이코노미아(oikonomia)” 집안을 살피는 일. 그러니 예산은 숫자의 표가 아니라 집을 돌보는 마음의 구조다. 더 멀리 말하면, 돈은 사명과 손을 맞잡게도, 서로 멀어지게도 한다. 그 둘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가 바로 청지기의 예산이다.


사명에 대해서는 마음이 뜨거울 때 쉽게 말할 수 있다. 헌신은 감동의 강도가 아니라 반복의 배치에서 드러난다. “나는 이 일에 부름 받았다”는 고백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내 지출과 일정의 흐름을 펼쳐 보면 된다. 그 표의 굵은 선이 가리키는 방향, 거기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복음의 위도와 경도다.


심리학은 우리의 마음이 돈을 다룰 때 얼마나 쉽게 길을 잃는지 알려 준다. 리처드 사일러(Richard Thaler)가 말한 정신적 회계(mental accounting). 같은 돈이어도 ‘여가비’, ‘비상금’, ‘보너스’ 같은 꼬리표에 따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사명”에는 박수를 보내면서, 막상 그 사명을 지탱할 경비 앞에서는 주머니가 닫힌다. 숫자에 이름표를 새로 붙이는 일, 그것이 청지기의 예산이 다루는 보이지 않는 영성이다. ‘남으면 드리겠다’는 회계는 대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반대로 ‘먼저 떼어 놓는’ 마음은 신기하게도 남는다. 바실리우스(Basil of Caesarea)는 이렇게 꾸짖었다. “창고에 쌓아 둔 것은 가난한 이의 몫이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방향을 정확히 짚는다. 사명은 남는 돈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명이 먼저면, 돈은 따라온다.


철학의 언어로 바꾸면, 예산은 가치의 위계를 고백하는 문서다. 무엇이 1순위인지, 무엇이 보조인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의 질서를 종이에 적어 두는 행위. 이 순서는 “내가 더 갖기 위한” 욕망을 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것을 더 멀리 흐르게 하기 위한” 질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공적 세계’의 품격은, 사적인 편의보다 지속될 것을 선택하는 태도에서 태어난다. 청지기의 예산은 바로 그 선택을 일상으로 옮긴다.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계속 남을 일에, 오늘의 한 줌을 미리 떼어 두는 결의. 그 사소한 선 긋기가 사명과 돈 사이의 거리를 줄인다.


신앙의 말로 하면 더 단순해진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맡은 자다(고린도전서 4:2). 주인은 목적을 정하시고, 맡은 자는 흐르게 한다. 그래서 청지기의 예산은 언제나 흐름의 도표다. 들어온 것을 흘려보낼 길을 미리 파두는 것. 누군가의 장학금이 되거나, 교회의 이름 없는 전구가 되거나, 이웃의 난방비가 되거나, 공동체의 창작을 받쳐 주는 보이지 않는 레일이 되거나. 크고 작은 선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로가 될 때, 사명은 구호를 벗어나 길이 된다. 길은 걸을수록 단단해진다.


어떤 이는 묻는다. “미리 떼어내라구요? 그래도 고정적으로 써야 할 돈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맞다.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신약의 역설은 이렇다. 가득 찼을 때가 아니라, 비워 낼 때 길이 열린다. 한 알의 밀알(요한복음 12:24)처럼, 먼저 내려놓을 때 영역이 넓어진다. 가지치기를 당한 포도나무처럼, 덜어낼수록 진액이 한 방향으로 모인다. 예산의 세계에서도 똑같다. 모으는 능력보다 덜어낼 용기가 사명의 추진력을 만든다. 덜어냄은 가난의 미학이 아니라, 집중의 기술이다.


나의 지갑이 오늘 누구의 손을 따뜻하게 하는가. 나의 시간표가 오늘 누구의 숨을 붙들어 주는가. 이 두 질문이 같은 곳을 가리킬 때, 돈과 사명의 거리는 거의 제로가 된다. 그때 예산은 더 이상 통제의 장치가 아니다. 기도의 형식이 된다. “주님, 이 가정을 이렇게 돌보게 하소서.” 숫자 옆에 적어 둔 짧은 메모가 하나의 시가 된다. ‘이번 달엔 저 아이의 교재’, ‘이 프로젝트의 다음 발걸음’,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비품’. 이름 붙인 자리마다 하늘의 숨이 들어온다. 부족한 것을 발견하면 누군가 할 것이라 생각지 않고 내게 다가온 몫으로 여긴다.


결국, 청지기의 예산은 사랑의 우선순위를 기록하는 일기다. 나는 무엇을 먼저 사랑하는가. 무엇을 나중으로 미루는가. 그 고백을 매달 한 번,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쓰는 사람. 그 사람에게 돈은 더 이상 불편한 주제가 아니다. 사명이 먼저인 삶에서, 돈은 발걸음을 맞추는 동반자다. 그리고 그 곁맞춤이 계속될 때, 우리의 집(oikos)은 더 이상 나만의 집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작은 식탁이 된다. 들어오는 이마다 배불리 먹고, 다시 흘러가는 식탁. 청지기의 예산은 그 식탁 도면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