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라는 사이비 종교
"자존감이 낮아서 힘들어요."
최근 몇 년, 대한민국은 거대한 '자존감 환자'들의 병동이 되었다. 서점에는 "너는 존재 자체로 특별해",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힐링 에세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사람들은 주문을 외우듯 "나는 소중해"를 되뇐다.
미안하지만, 찬물을 좀 끼얹어야겠다. 솔직히 당신은 특별하지 않다. 물론 나도 포함된다.
아무런 노력도, 성취도, 남을 위한 기여도 없이 방구석에 누워 "나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야"라고 중얼거리는 것. 그것은 자존감이 아니다. 그저 비대해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자, 애처로운 '정신 승리'일 뿐이다.
근거 없는 믿음은 망상이다
우리는 자존감을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는 마음'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실력을 키우는 대신, 마인드 컨트롤에 집착한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자존감은 '효능감(Self-Efficacy)'에서 나온다. "나는 사랑받을 만해"가 아니라,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어"라는 믿음이 진짜다.
근거(실력) 없는 자존감은 모래성이다. 세상의 풍파가 닥치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징징대거나, 더 깊은 자기 위로의 동굴로 숨어버린다. '우쭈쭈' 해주는 위로에 중독된 '어른이'들은 그렇게 탄생한다.
세상은 당신에게 빚진 게 없다
냉정하게 말해보자. 세상은 당신의 '존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이 궁금해하는 건 당신의 '쓸모'다.
"당신은 우리 조직에, 우리 사회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이것은 잔인한 게 아니라 공정한 것이다. 남들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데, 왜 당신은 '존재만으로' 박수를 받으려 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다.
아들러의 일침 : 거울 좀 그만 봐라
아들러(Alfred Adler) 심리학의 핵심은 '타자 공헌(Contribution to others)'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오며, 행복은 타인에게 기여함으로써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루 종일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감정이 상했어", "내 자존심이 다쳤어". 온통 '나, 나, 나'뿐이다.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가? 제발 거울 좀 그만 봐라. 당신의 내면을 파고든다고 거기서 금이 나오진 않는다.
대신 창문을 열고 밖을 봐라. 그리고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라. 작은 청소를 하든, 동료의 일을 돕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를 느낀다.
특별해지고 싶다면, 증명하라
당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 순간 역설적인 자유가 찾아온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실패해도 부끄럽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진짜 어른의 자존감은 거울 속의 나에게 거는 주문이 아니라, 거친 세상에 부딪혀 얻어낸 굳은살에서 나온다. 그러니 "사랑해"라는 말로 도망치지 말고, "해냈다"는 성취로 당신을 증명하라. 당신을 구원하는 건 얄팍한 위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의 실력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