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의 독방, 80억의 바다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노래

by 강훈

2025년 12월,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가 소멸’이라는 공포의 성벽 안에 갇혀 있다. 합계출산율 0.7명.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이 숫자를 보며 우리는 절망한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성벽 너머를 보면 풍경은 사뭇 다르다. 전 세계의 인구는 올해 82억 명을 돌파했고, 인류 전체로 보면 여전히 '인구 과잉'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우리의 비극은 정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정의한 한국인'의 범위가 너무 좁아서 생기는 폐쇄성의 결과일까.


'순혈'이라는 유통기한 지난 가스라이팅

우리가 인구 위기를 '재앙'으로 체감하는 근저에는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가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섞이며 형성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혈통'이라는 집단적 최면 아래 타자를 배척해 왔다.

하지만 대표적인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보라. 그들은 이미 오래전 자연 인구 감소의 문턱을 넘었지만 소멸을 걱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혈연(DNA)'이 아니라 '가치(헌법과 자유)'에 동의하면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한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민자를 수혈하며 국가의 근육을 키울 때, 우리는 핏줄의 순수성을 지키느라 스스로를 '0.7의 독방'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혈통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이제 국적은 DNA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공유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만 명의 팬들을 보라. 인종과 언어,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노래를 부르며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그녀의 노래 <Long Live>의 가사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I was screaming long live all the magic we made. And bring on all the pretenders. One day we will be remembered.

(난 외치고 있었어, 우리가 만든 모든 마법 같은 순간이 영원하길 그리고 우리를 노리는 모든 이들이여, 덤벼봐. 언젠가 우리는 기억될 거니까)

이 가사처럼, '한국인'이라는 이름 역시 혈통이 아닌 '우리가 함께 만든 마법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되어야 한다. 김치를 먹고 한국말을 하며, 한국의 미래를 자신의 미래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K-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품이 필요하다.


소멸이 아니라 '진화'를 환대하라

우리가 아는 '전통적 한국인'은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진화'다. 2025년 현재, 한국의 국제결혼 비중은 이미 10%에 육박하며 우리의 이웃은 이미 다채로워지고 있다.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를 '언젠가 떠날 부품'이 아닌 '내일의 시민'으로 대우할 때, 비로소 0.7이라는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80억 인구의 바다에서 한국이라는 배를 계속 띄울 수 있는 동력은 좁고 낡은 성벽을 허무는 용기에서 나온다. "Long live all the magic we made." 우리가 만들어온 이 빛나는 문화를 함께 노래할 준비가 된 모든 이에게 기꺼이 '한국인'이라는 마이크를 건네야 한다. 그것이 인구 소멸이라는 공포를 이길 유일한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