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유아기 탈출하기

목사 의존증이라는 달콤한 함정

by 강훈

한국 교회에는 기이한 풍경이 하나 있다. 세상에서는 박사 학위를 가졌거나 한 기업을 이끄는 리더인 이들이, 교회 문만 들어서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어린아이'가 된다는 점이다.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일상의 문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심지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할지까지 목회자의 입을 바라본다. 이러한 '목사 의존증'은 겉으로는 겸손한 순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스스로 영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만이자 성숙을 가로막는 달콤한 독약이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의 성장과 행복에는 세 가지 필수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자율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내 신앙의 동기가 외부(목회자의 강요나 집단의 압력)에 있을 때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자율성을 가질 때 영혼은 비로소 건강하게 자란다. 목회자의 정답을 받아 적기만 하는 신자는 결코 영적 '유능성'을 가질 수 없으며, 그저 종교 서비스의 수동적인 소비자로 남을 뿐이다.


이러한 의존증은 목회자를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보자'로 오해하는 잘못된 신학에서 기인한다. 종교개혁의 핵심 기치였던 '만인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의 원리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설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 구조는 평신도를 영원한 수혜자로, 목회자를 영적 독점자로 규정하며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했다. 목회자의 지도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나의 사유와 질문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질문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문제는 이러한 의존증이 목회자에게도 '권력의 유혹'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교인들이 의존할수록 목회자는 자신이 모든 답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고, 이는 권위주의와 독선으로 이어진다. 건강한 목회자는 교인을 자신에게 묶어두는 사람이 아니라, 교인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Facilitator)'여야 한다. 최고의 스승은 제자를 영원히 곁에 두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가 자신을 떠나 스스로의 길을 가게 하는 사람이다.


이제 평신도는 '영적 자립'을 선언해야 한다. 목회자의 설교는 참고서일 뿐, 인생이라는 본문의 해석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세상의 지식과 신앙의 언어를 통합해 보려는 지적 투쟁이 필요하다. 목사님이 "복 받을 것"이라고 말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고통과 기쁨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때문에 믿는 '자기 언어'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성숙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아이의 단계에서 벗어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내가 책임지고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성인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사 의존증이라는 안전한 감옥을 나와,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익히자. 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타인과 건강하게 연대할 수 있으며, 그때의 신앙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