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거룩함을 발견하기
우리는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고, 모든 현상이 데이터로 분석되는 효율의 시대를 산다. 손가락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물건을 주문하고,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정보로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한다. 이 비대해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놀라움’이다. 세상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고, 일상은 그저 해치워야 할 숙제의 나열이 된다. 익숙함이라는 병에 걸린 현대인에게 삶은 더는 축제가 아닌, 낡고 해진 옷처럼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이 메마른 일상에 신앙이 던지는 가장 파격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이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유대교 철학자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이를 ‘근원적 경이로움(Radical Amazement)’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경이로움이란 단순히 신기한 것을 보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지각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엄청난 신비이며, 내가 누리는 이 모든 평범함이 실은 거대한 은혜의 산물임을 깨닫는 시각의 뒤집기다.
신앙이 회복시켜 주는 경이로움의 감각은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채소 하나가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흙의 인내와 햇살의 수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가 개입했는지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경이로움의 눈을 가진 자에게 평범한 식재료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생명의 경외심을 담은 성물이 된다. 신앙은 우리를 종교적인 장소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하는 인문학적 훈련이다.
경이로움은 인간의 자아를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세상을 통제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거대한 신비의 흐름 속에 내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근원적 경이로움'을 회복한 사람은 더 이상 당연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서, 이웃이 건네는 투박한 인사 한마디에서, 심지어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 속에서도 삶의 숭고한 의미를 끌어올린다. 그들에게 일상은 더 이상 버텨야 할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 마주하는 거룩한 사건이 된다.
이것은 '소유'의 삶에서 '경탄'의 삶으로 나아가는 주권적인 태도다. 세상을 내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존엄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대우하는 예의다. 신앙은 우리에게 마술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시선'을 되찾아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오만함을 버리고,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회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별 것 없는 일상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야 한다. 당신이 오늘 마신 한 잔의 물, 당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의 숨소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경이로움임을 인정하자.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위가 아니라, 당신이 무심코 지나쳤던 그 평범한 일상의 틈새에서 당신의 감격을 기다리고 계신다. 삶을 소유하려 애쓰기보다 삶 앞에 경건하게 놀랄 줄 아는 인간이 되자. 그때 비로소 당신의 평범했던 하루는 성스러운 축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