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
교회 입구에는 대개 '환영합니다'라는 따뜻한 문구가 붙어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안식처임을 자처하지만, 정작 그 문턱을 넘어서는 이들을 맞이하는 시선은 촘촘한 거름망과 같다. 우리는 성경의 가장 위대한 계명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실제로는 내가 선택한,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나와 닮은 이웃들만을 선별하여 사랑한다. 이것은 환대가 아니라 취향과 배경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거룩한 동호회에 가깝다.
이런 현상을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Randall Collins)는 동종 선호 (Homophil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 정치적 성향, 혹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끌리고 그들하고만 관계를 맺으려는 성향을 뜻한다. 문제는 이 본능적인 '끼리끼리' 문화가 종교적 외피를 입을 때, 차별과 배제가 '영적 분별'이나 '거룩'으로 둔갑한다는 데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가난한 이웃,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 혹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교회의 문턱은 세상의 문턱보다 낮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교회는 그 어느 곳보다 견고한 진입 장벽을 가진다.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비슷한 말투를 쓰며, 비슷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이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공동체가, 그 궤도에서 벗어난 이들에게는 시리고 낯선 공간이 된다. 우리가 '이웃'이라 부르는 반경이 오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신앙의 실천이 아니라 지독한 자기애의 확장일 뿐이다.
진정한 신앙은 나의 동종 선호라는 본능을 거스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이 보여준 환대의 핵심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있었다. 세리와 창기, 나병 환자처럼 당시 사회가 도덕적, 위생적 이유로 격리했던 이들을 예수는 '이웃'의 원 안으로 끌어들였다. 환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지 않은 타인이 내 삶에 침범하도록 허용하는 상식적인 인본주의의 실천이다.
반전은 환대의 유익에 있다. 우리가 나와 다른 이웃을 밀어낼 때 공동체는 순수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여서 썩어간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편협함을 깨닫고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환대는 타인을 돕는 동정을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닫혀 있던 나의 세계를 넓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운 그 좁은 사랑의 울타리 밖에서, 우리가 외면한 그 낯선 이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제 우리는 '선택적 환대'라는 위선을 멈춰야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이웃이 혹시 거울 속의 당신과 너무 닮아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 교회 문턱을 넘는 모든 이가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의 시선이 누군가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상식적인 신앙인은 이웃을 고르지 않는다. 대신 어떤 이웃이 곁에 오더라도 그가 편히 쉴 수 있는 넉넉한 자리를 마련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