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의 선을 넘는 야만에 대하여
- 손현보 목사의 선언이 남긴 위험한 파장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가 처음 내뱉은 말이 "정교분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법치주의가 부여한 관용의 기회를, 오히려 법치주의의 근간인 사회적 계약을 파기하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오만이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교분리는 단순히 '종교와 정치가 상관하지 말자'는 소극적 규칙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시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각자의 '절대적 진리'를 공적 광장에서는 '보편적 언어'로 번역하자는 약속이다.
- 공론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거룩한 고집’
그의 행보가 사회적으로 위험한 첫 번째 이유는 '정치의 종교화'에 있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의 예술이다. 하지만 종교적 확신이 정치의 영역으로 여과 없이 진입할 때, 정책에 대한 논쟁은 '선과 악의 전쟁'으로 돌변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는 이제 설득해야 할 동료 시민이 아니라, 척결해야 할 '사탄'이자 '공산주의자'가 된다. 손 목사가 "계속 정치적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하며 정교분리를 부정하는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마비된다. 하나님의 뜻을 대리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타협이란 곧 배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완고한 독선이 공적 권력과 결탁하려 할 때, 민주주의의 기초인 합리적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이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이웃과 이웃 사이에 거대한 구덩이를 파는 행위다.
- 십자가를 깃발로 전락시키는 야만
더 큰 비극은 그가 믿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의 행동은 '복음의 도구화'라는 야만성을 띤다. 기독교의 본질은 낮은 곳을 향한 연대와 권력에 대한 예언자적 감시이지, 스스로 권력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욕이 아니다.
그가 십자가를 앞세워 특정 정치 세력의 스피커를 자처할 때, 기독교는 초월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상실하고 저렴한 ‘정치적 로비 단체’로 전락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정치적 야욕의 방패막이로 쓰는 순간,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 아닌 세상의 소음이 된다. 젊은 세대와 대중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그들이 진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진리를 독점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저렴하고 야만적인 태도에 진저리를 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기독교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품격을 가장 밑바닥까지 깎아내리고 있다.
‘가짜 순교’라는 심리적 덫을 경계함
손현보 목사와 그를 따르는 이들을 결집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피해망상적 순교 의식'이다. 그들은 법적 절차와 사회적 비판을 '기독교 탄압'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신성한 투사로 격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순교가 아니라, 현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종교라는 외투 뒤로 숨는 비겁한 은신이다.
진정으로 주권적인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신념이 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충돌할 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타인을 정죄하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결코 경건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광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정치적 목사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서 가만히 손을 잡는 다정한 이웃이다. 종교가 권력을 탐하는 순간 하나님은 사라지고 괴물만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충분히 목격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