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남을 것인가, 예술로 부활할 것인가

<일무>의 베시 어워드 수상이 교회에 던지는 질문

by 강훈

최근 무용계에서 날아온 수상 소식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一舞)>가 뉴욕 무용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제41회 베시 어워드(Bessie Awards)에서 '최우수 안무가·창작자상'을 거머쥐었다.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한 이 작품에 대해 현지 언론은 "전통과 현대의 변증법적 조화"라며 극찬했다. 총연출을 맡은 정구호 감독은 수상 기념 간담회에서 "전통을 보존하는 것만큼이나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선언은 과거의 영광에 발이 묶여 숨 가쁘게 변하는 세상과 불통 중인 한국 교회의 안일함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멈춰버린 시간의 화석

오늘날 한국 교회의 풍경은 정지된 시간의 전시장과 같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의 신앙 문법과 권위주의적인 의전, 시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낡은 언어들은 마치 화석처럼 예배당 안을 떠돌아다닌다. 전통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교회는 스스로를 성벽 안에 가두었고, 그 성벽이 높아질수록 세상과의 거리감은 심연처럼 깊어졌다.

정구호 감독이 <일무>에서 보여준 혁신은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본질을 현대인의 감각으로 ‘번역’해낸 작업이었다. 그는 오방색의 과한 장식을 걷어내고 춤사위의 원형만을 남겨 현대적 무대 위에 세웠다. 반면, 교회는 본질인 복음의 생명력보다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낡은 형식과 제도적 권위에 더 집착하고 있다. 본질을 잃은 채 형식만 보수하려는 고집은 결국 생동감을 잃은 수집품으로 취급될 뿐이다.


지평 융합: 전통과 현재의 대화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그의 해석학에서 ‘지평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전통이란 과거에 고착된 고정불변의 물체가 아니라, 현재라는 지평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가다머의 관점에서 볼 때,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과거의 해석만을 고집하는 전통은 더 이상 전통이 아니라 소통이 단절된 독백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핵심인 ‘성육신(Incarnation)’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와 구체적인 문화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왔다는 사건은, 신앙이 결코 시공간을 초월한 진공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강조했듯, 신앙은 ‘문화의 토양’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시대가 던지는 실존적 고통과 질문에 응답하지 못하는 교회는, 관객이 떠나버린 텅 빈 무대 위에서 과거의 춤사위만을 반복하는 무용수와 다를 바 없다.


본질을 향한 영성적 미니멀리즘

정구호 감독이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덜어내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성적 미니멀리즘’의 회복이다. 비대해진 조직과 화려한 시스템,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적 욕심들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그 낡은 장식들 아래 숨겨진 ‘낮은 곳으로 임하는 사랑’과 ‘이웃을 향한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복음의 원형을 동시대의 언어로 복원해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보존’을 핑계로 변화를 거부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한다는 것은 진리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오늘날의 삶 속에서 실제적인 생명력이 되도록 치열하게 ‘재해석’하는 일이다. 여성을 배제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을 진리수호라고 믿는 오해를 멈추고, 혐오와 각자도생의 시대에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제시하는 주체적인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사유하는 단독자들의 무대

결국 <일무>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용수 개개인이 전체의 일부로 소모되지 않고 각자의 숨결을 가진 예술가로 서 있기 때문이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주입하는 정답을 복창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적 고뇌를 이어가는 ‘주권적 개인’들이 연결될 때 비로소 공동체는 살아 숨 쉬게 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전통의 새로운 생명력을 증명해 낸 <일무>의 수상 소식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신앙은 유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대를 살리는 예술로 부활할 것인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며, 흐르지 않는 진리는 폭력이 된다. 낡은 장식을 찢고 시대의 한복판으로 걸어 나오는 용기, 그 존엄한 이탈과 변화의 여정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신앙의 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