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주권

생산성이라는 이름의 논리에 맞서다

by 강훈

우리는 잠을 '내일의 노동을 위한 재충전'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휴식조차 다음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시대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수면 시간은 죄악시되거나 가성비 떨어지는 행위로 여겨진다. 하지만 잠은 단순히 기계를 끄는 '셧다운'이 아니다. 잠은 낮 동안 힘들게 달려왔던 몸과 영혼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만의 평안함을 누리게 하는 고유한 시간이다.


- 24/7 시스템에 대한 고요한 저항

사회학자 조너선 크래리(Jonathan Crary)는 그의 저서 <24/7: 잠의 종말>에서 잠을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식민지화하지 못한 영토'라고 불렀다. 끊임없이 접속하고 소비하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잠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물건을 살 수도, 광고를 볼 수도, 노동력을 제공할 수도 없다. 생산과 소비의 세상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행위, 그것이 바로 잠이다. 잠이 아깝다고 느껴졌던 젊은 날의 강박은 사실 사회 시스템이 주입한 '유능해야 한다'는 압박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잠을 긍정하는 것은 내가 쓸모로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만의 선언이다.


- 꿈: 무의식의 왕도로 향하는 길

심리학적으로 잠은 또 다른 나와 조우하는 신비로운 의식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Royal Road)'라고 불렀다. 낮의 자아가 사회적 규범과 이성의 검열 아래 억눌려 있었다면, 밤의 자아는 꿈이라는 상징의 언어를 통해 억압된 욕망을 마음껏 쏟아낸다.

신경과학자 매튜 워커(Matthew Walker)는 수면 중 발생하는 REM(꿈꾸는 잠) 단계가 정서적 응급처치소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꿈은 낮 동안 겪었던 날카로운 감정들을 부드럽게 다듬고, 창의적인 연결망을 구축한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는 현실의 물리적 제약을 벗어나 '또 다른 나'를 경험하며 자아의 지평을 넓힌다. 꿈속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과 인물들은 사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수만 갈래의 가능성들이다.


- 존재의 목적은 생산에 있지 않다

인간 존재의 목적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루어내고 쌓아 올리는 것에 있다면,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잠은 명백한 실패다. 그러나 존재의 목적이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온전한 평화에 머무는 것에 있다면, 잠은 생의 가장 빛나는 활동이다.

오늘 밤, 당신이 눈을 감고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일의 활력을 위해 준비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우주의 비밀스러운 뒷마당으로 들어가, 낮의 소음이 가렸던 진짜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달콤한 잠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당신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보길 바란다. 잠은 세상이 당신에게 허락한 가장 안전한 시간이자,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