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이 구걸리즘으로
- 성공의 자격과 '결핍 서사'라는 기묘한 집착
어느 분야에서든 눈부신 성취를 거둔 이가 등장하면, 한국 언론은 하이에나처럼 그들의 '뒷마당'을 파헤친다. 그들이 어떤 훈련을 견뎠고 어떤 철학으로 무장했는가보다 더 시급하게 다뤄지는 것은 그들의 집이 몇 평인지,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지와 같은 자본의 지표들이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미소 뒤에서 그 집안의 자산 규모를 계산하는 기사를 마주할 때, 우리는 언론이 가진 지독한 결핍과 천박함을 동시에 목격한다.
- 가난해야만 빛나는 메달이라는 왜곡된 미학
이러한 기사의 밑바닥에는 '성공은 가난을 딛고 일어선 것'이어야만 한다는 비뚤어진 보상 심리가 깔려 있다. 대중은 결핍을 극복한 영웅담에 열광하고, 언론은 그 수요에 맞춰 '고생 끝에 낙이 온' 서사를 억지로 끼워 맞춘다. 이때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선수의 금메달은 마치 반칙이나 된 것처럼 취급받거나, 시기심의 대상이 된다.
가난은 스포츠의 필수 옵션이 아니며, 부유함은 비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금메달의 가치는 그가 흘린 땀의 농도로 결정되는 것이지, 부모의 통장 잔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가 부자라는 사실이 기사화되는 순간, 그가 견뎌온 고독한 사투와 순수한 열정은 '돈으로 산 성취'라는 오염된 프레임 속에 갇혀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저널리즘의 야만이다. 아니 저널리즘이라는 단어도 쓰기 아까운 수준의 형편없음이다.
- 조회수에 목을 매달아 버린 저널리즘의 품격
기자가 선수의 재력을 추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돈(조회수)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유함을 폭로하여 시기심을 자극하거나, 반대로 자수성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기사는 플랫폼 경제에서 훌륭한 수익원이 된다.
하지만 기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기술자를 넘어, 시대의 품격을 지키는 감시자여야 한다. 선수의 실력과 관계없는 사생활을 들춰내어 가십거리로 소모하는 행위는 스스로가 언론인이기를 포기하고 '클릭 구걸자'로 전락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런 수준 낮은 기사가 당당히 포털 메인을 장식하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과 미학적 감수성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방증하는 창피한 성적표다.
- 우리는 무엇에 환호해야 하는가
우리는 선수의 집이 부유한지에 분노하거나 감탄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중력을 이겨내고 공중을 유영하던 그 선수의 단단한 눈빛이며,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그 숭고한 의지다. 자본의 논리가 모든 것을 삼키는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한 인간의 성취를 축하하는 자리에서만큼은 돈의 냄새를 지워야 한다.
금메달에 가격표를 매기려 들지 마라. 인간의 위대함은 통장의 숫자 따위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박한 기사의 행간을 넘어, 오직 자신의 한계를 돌파한 한 인간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나 품격 있는 관객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오늘, 선수의 미소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황금빛 메달인가, 아니면 그 뒤에 가려진 타인의 자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