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아름다운 어른이 사라진 시대를 돌아보며
- 박수칠 때 웃으며 내려오는 용기
최근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우리는 잊지 못할 장면을 보았다. 금메달을 딴 후배 김길리 선수 곁에서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며 은메달을 목에 건 최민정 선수의 미소다. 정상을 지키던 이가 자신의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내어주는 모습은 승패를 넘어선 숭고함을 보여준다. 1등을 놓친 아쉬움보다 후배의 성장을 기뻐하는 그 태도는, 자기 자신의 이름보다 '팀'과 '미래'를 더 크게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은 단순히 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온 '왕좌'를 포기하는 담대한 자기 싸움이다.
- 나이가 권력이 된 공동체의 민낯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특히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모습은 이와 대조적일 때가 많다. 한국 사회 특유의 유교적 서열 문화가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나이'와 '연차'는 곧 영적 권위로 오해받곤 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젊은 세대의 실력을 저평가하거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찬양 사역이나 교회 리더십의 자리에서 수십 년째 같은 얼굴들이 머물러 있는 것은, 그들이 유능해서라기보다 다음 세대가 들어올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성숙함은 세월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아질 때 공동체가 커진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실제로 리더들이 작아지고 섬기면서 성장하는 교회의 사례를 볼 수 있고, 반대로 공동체의 궂은 일을 청년들의 전유물인 듯 취급한 탓에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씁쓸한 사례도 우리는 알고 있다.
- 나를 비워 타인의 자리를 만드는 일
영성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진정한 리더십을 ‘환대(Hospitality)’라고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환대란 단순히 손님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들어와 성장할 수 있도록 내 안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성경 속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고백했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은 바로 이 환대의 절정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고, 기꺼이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사라짐으로써 진정한 빛이 드러나게 돕는 것. 이것이 성숙한 인간의 도리이자, 기독교가 추구하는 자기 비움(Kenosis)의 핵심이다.
- 당신은 디딤돌인가, 거대한 벽인가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정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후배와 다음 세대에게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디딤돌'인가, 아니면 그들의 시야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인가. 진정한 어른의 품격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기쁘게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느냐에서 결정된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누군가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삶이야말로 가장 예수를 닮은 삶일 것이다. 오늘 당신이 붙들고 있는 그 자존심과 권위가 혹시 누군가의 내일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