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을 무기 삼은 권력이라는 우상
- 예배당 뒤편에서 터져 나온 짐승의 소리
강단 위에서 성령의 임재를 구하던 뜨거운 언어가 강단 아래에선 동역자의 인격을 난도질하는 흉기가 되었다. 물론 그는 부교역자들을 “동역자”로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십수 년에 걸친 지속적인 폭언과 비하 발언은 단순한 '성격의 급함'으로 변명될 수 없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화려한 목회 현장에 하나님이 계셨느냐고.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 면전에서 형제를 '개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통렬한 의구심이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성공이라는 우상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존엄을 제물로 바쳐온 권력자의 비대한 자아였다.
- 인성을 지워버린 ‘기능적 영성’의 비극
우리는 오랫동안 영성과 인성을 별개의 영역으로 오해해왔다. 기도를 많이 하고 은사가 나타나면, 그의 성품이 거칠어도 '영권이 강하다'는 말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러한 분리는 목회자를 '인격적 존재'가 아닌 '영적 기능공'으로 만들었다. 설교를 잘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격적 학대나 무례함은 사소한 결점으로 아무렇지 않게 덮였다. 그러나 인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성이란 영성이 담기는 그릇이며, 그 그릇이 깨져 있다면 그 안에 담긴 것은 생명수가 아니라 독극물일 뿐이다.
연결을 끊고 지배를 선택한 리더십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은 리더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못할 때, 조직 안에 수치심(Shame)의 문화를 퍼뜨린다고 경고한다. 이번 사건에서 목회자가 사용한 폭언은 하급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려 자아를 마비시키는 ‘수치심의 무기화’다. 브라운에 따르면 진정한 힘은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오지만, 가짜 권력은 타인을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유지하려 한다. 그가 휘두른 욕설은 영적 권위의 증거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공허를 직면하지 않기 위해 타인의 영혼을 짓밟는 쪽을 선택한 끔찍한 ‘권력의 갑옷’일 뿐이다.
- 무릎의 높이가 아닌 예의의 깊이로
이제 우리는 목회자의 영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을 새로 써야 한다.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느냐가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얼마나 정중하게 대하느냐가 그 영성의 진짜 실력이다. 하나님은 수만 명의 환호 소리가 아니라, 이름 없이 수고하는 부교역자와 스텝들의 억울한 눈물 속에 계신다. 진정한 영성은 신비하고 기적적인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과 진실하게 연결되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완성된다. 당신의 진짜 영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