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욕한다는 것

거룩한 분노는 때로 상스러운 언어를 입는다

by 강훈

- 위선의 성벽을 허무는 불경한 언어

기독교 공동체에서 '욕'은 금기 중의 금기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성경 구절은 종종 신자들의 입술을 결벽증적인 정숙함 속에 가두는 자물쇠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종교 기득권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 혹은 "회칠한 무덤"이라 소리쳤다. 현대어로 생각해보면 “이런 독사 새끼들”이다. 정말 세다. 당시 맥락으로 보면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상대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거친 욕설이었다. 정제되고 품격 있는 언어가 도리어 진실을 은폐하는 수단이 될 때, 거친 말 한마디는 위선의 성벽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영적 타격 수단이 된다.


- '배설'로서의 욕과 '증언'으로서의 독설

문제는 욕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언어가 향하는 '방향'과 '목적'이다. 지난번 논란이 된 목회자의 욕설이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권력의 배설’이었다면, 예수의 독설은 억압받는 자들을 대신해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는 ‘진리의 증언’이었다. 전자가 약자를 짓밟는 ‘폭력’이라면, 후자는 비대해진 기득권의 자아에 구멍을 내는 ‘수술칼’이다. 지혜롭게 욕한다는 것은 내 분노를 풀기 위해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잠든 양심을 깨우기 위해 언어의 마찰력을 극대화하는 행위여야 한다.


- 아래로부터의 언어가 가진 전복적 힘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카니발적 세계관’을 통해 공식적인 질서와 위계가 무너지는 해방의 순간을 설명한다. 카니발의 핵심은 ‘상스러운 언어’와 ‘비속함’이다. 고결하고 엄숙한 공식 언어는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쓰이지만, 시장 바닥의 거친 언어와 풍자는 그 권력을 희화화하고 땅으로 끌어내린다. 예수의 독설은 바로 이 카니발적 전복이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을 때, 예수는 상스러운 언어를 빌려 그들의 가짜 거룩을 조롱했다. 욕설의 순기능은 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권위주의의 갑옷을 녹여버리고, 그 속에 숨은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데 있다.


- 당신의 욕은 누구를 살리는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금언(禁言)이 아니라 '언어의 분별'이다. 지혜로운 욕설은 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만약 당신이 내뱉는 거친 말이 누군가의 억울함을 대변하거나, 거대한 악의 행보를 멈춰 세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기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나의 기분을 배설하거나 타인을 통제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가장 비겁한 독이 될 뿐이다. 당신의 입술을 떠난 그 뜨거운 욕설은 지금 누군가를 깨우는 죽비인가, 아니면 영혼을 난도질하는 칼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