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의 나이에 엄마의 부재를 겪고, 열 명의 새어머니를 거치며 자라온 나의 시간 속에는 ‘다정한 아버지’라는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다. 폭력과 외도로 얼룩진 아버지의 뒷모습은 나에게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마주해야 할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오직 기도로 삶을 버텨낸 할머니의 온기만이 내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준 유일한 힘이었다.
이런 척박한 삶의 토양을 가진 내가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밀려온 감정은 환희보다 미안함이었다. 더 튼튼하고 깊은 뿌리를 가진 부모를 만났더라면, 나의 아이들은 훨씬 더 높은 곳까지 경계 없이 날아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빠의 상처가 아이들의 날갯짓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빈곤한 정서가 아이들의 하늘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다. 부모의 한계가 자녀의 한계가 되는 세상의 딱딱한 원리 앞에서, 나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갚지 못할 거대한 부채를 안고 산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그 미안함의 심연 속에서 나는 기적을 본다. 나의 결핍과 서툰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고 보석처럼 단단하게 자라주었다. 그런 면에서 참으로 감사하다. 아빠의 그늘이 짙었음에도 그 틈새를 뚫고 찬란하게 피어난 아이들의 존재는, 내 삶이 더 이상 실패한 기록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빛이다.
조건 없는 신뢰로 나를 ‘아빠’라 불러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대의 가능성을 더 깊이 배운다.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그 넓은 마음 앞에서, 오히려 아빠인 내가 아이들에게 기대어 삶의 온기를 수혈받는다. 보물 같은 너희가 나의 딸이라는 사실은 내 생애 가장 초현실적인 축복이자, 내가 하나님에게 받은 가장 과분한 선물이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생을 선택할 주권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너희의 아빠가 되기를 택할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상처 입은 아빠가 아니라, 너희의 날개에 무게를 더하지 않는 투명한 바람 같은 존재로 곁에 머물고 싶다.
사랑한다. 나의 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