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목사 안수 금지??

성전의 문턱을 넘지 못한 절반의 복음

by 강훈

최근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여성목사안수에 대한 포스팅을 쓰신 걸 봤다. 구구절절 맞말이다. 그럼에도 못마땅한 피드백들이 있나 보다. 주관적 느낌이겠지만 선배님이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에 부족하나마 그 뒤로 줄을 서 본다.


- 강단 아래의 헌신, 강단 위의 금기

교회는 여성의 ‘봉사’ 없이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구조다. 주방의 식탁부터 주일학교의 교실까지 여성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가장 거룩하다고 여겨지는 '안수'의 문턱 앞에서 여성은 멈춰 서야 한다. 일부 교단은 여전히 여성 목사 안수를 금기시하며, 이를 성경적 가치를 지키는 보수 신앙의 보루로 여긴다. 복음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노래하면서도, 정작 성별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로 영적 직분을 제한하는 이 역설은 오늘날 교회가 마주한 가장 서글픈 균열이다.


- 그들의 근거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측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창조 질서’다.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의 돕는 베필로 지어졌으므로, 남성에게는 ‘머리 됨(Headship)’의 권위가 부여되었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바울의 텍스트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딤전 2:12)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적용한다. 셋째는 전통이다. 예수의 12 사도가 모두 남성이었으며, 교회의 역사적 계승이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논리다. 이들에게 성경은 시대와 불화하더라도 고수해야 할 불변의 법전이며, 여성 안수 허용은 곧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그들 기준이라면 선지해장국을 먹는 목사는 큰일 날 사람이다. 구약의 레위기는 물론, 신약의 사도들이 모여 결정한 첫 공의회에서도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은 우상 숭배 금지만큼이나 엄중하지 않았는가.


- 가다머의 ‘지평 융합’과 텍스트의 감옥

특정 문자를 근거로 여성을 배제하는 행위는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가 말한 ‘지평 융합(Fusion of Horizons)’에 실패한 결과다. 가다머에 따르면 이해란 과거의 텍스트가 가진 지평과 현재 해석자의 지평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바울이 여성을 향해 침묵을 명했던 것은 당시 가부장적 사회 구조 안에서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문화적·목회적 조언이었을 뿐,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성경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1세기의 문화적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만인 평등과 해방'의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 1세기의 사회상을 21세기에 강요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문화적 박제기술'에 불과하다. 예수는 안식일의 문자에 매몰된 이들을 향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마가복음 2:27)이라 일갈했다. 법의 목적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있지, 인간을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않다. 여성 안수를 막아서는 이들이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낡은 의자인가. 성경의 정신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하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며, 차별의 벽을 허무는 데 있다.


- 하나님의 형상에 성별은 없다

이제 교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가, 아니면 성경이 쓰인 시대의 관습을 믿는가. 진정한 영성은 신체적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응답하는 주권적 태도에서 나온다. 뵈베, 브리스길라, 유니아처럼 초기 교회 성장의 주역이었던 여성 리더들을 외면한 채, 몇몇 금지의 문구 뒤에 숨는 것은 신앙의 직무유기다. 시대적 부름은 교회가 세상의 유행을 따르라는 요구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인 ‘자유와 평등’을 가장 정직하게 실현하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다. 당신이 서 있는 성전은 모든 하나님의 형상을 품는 넓은 마당인가, 아니면 절반의 인류를 밀어내는 폐쇄적인 요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