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한 이유

혐오를 연기하여 편견을 박살 내다

by 강훈

- 제자들의 속마음을 읊어준 거울

딸을 위해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을 향해 예수님이 입술에 올린 “개”라는 단어는 사실 예수님 자신의 생각이라기보다, 그 곁에 서 있던 제자들의 분위기였다. 여인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자 제자들은 “귀찮게 구니 보내버리자”며 짜증을 냈다. 예수님은 그 순간 제자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하지만 속으로는 굳게 믿고 있던 유대인으로서의 선민의식과 차별의 언어를 대신 읊어준 것이다. 가장 추악한 편견을 가장 거룩한 이의 입술을 통해 듣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편견과 인종주의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똑똑히 보여준 것이다.


- 경계선에서 벌어진 ‘자아의 확장’

이 사건의 장소는 이스라엘의 국경 밖인 ‘두로와 시돈’이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사역 범위를 유대인으로 한정 지으려는 유대교적 자아와, 온 세상을 품는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신적 정체성 사이에 서 있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모욕을 던짐으로써 유대교라는 낡은 시스템의 ‘최종 논리’를 밀어붙이며 그것을 드러냈다. 그리고 여인은 그 논리를 ‘부스러기’라는 위트로 깨뜨렸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사실 패배해 준 것이다. 이 ‘사랑의 패배’를 통해 복음은 유대라는 담장을 넘어 이방이라는 광야로 비로소 흘러나갈 수 있었다.


- ‘사회적 신분’보다 강한 ‘관계의 권리’

여인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답한 지점이 핵심이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어놓은 ‘개’라는 신분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개조차도 ‘주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의 권리를 주장했다. 세상이 나를 짐승이라 부르고 소외시켜도, 내가 당신을 ‘나의 주(Lord)’라 부르는 한 당신과 나는 끊어질 수 없다는 논리다. 예수님이 이토록 일탈적인 언행을 한 이유는, 어떤 모욕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인간의 절박한 권리를 세상 앞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침묵과 모욕을 이겨낸 ‘해석의 힘’

이 사건에서 진짜 주인공은 가나안 여인이었다. 예수님은 침묵하고 거절하고 모욕했지만, 여인은 그 모든 부정적인 신호를 ‘자비의 가능성’으로 재해석해냈다. 신앙의 주권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떤 태도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실 것’이라는 근거를 찾아내는 해석의 용기에 있다. 예수님은 이 이질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설득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