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라는 이름의 헛발질과 ‘살아냄’의 실종
메타버스부터 AI까지, 교계의 세미나 목록을 보면 마치 최첨단 실리콘밸리의 기술 포럼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화려한 홍보 아래에서 정작 교회의 생명력은 말라가고 있다. 유행하는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병든 몸이 나을 리 없건만, 우리는 여전히 ‘방법론’이라는 이름의 영양제만 찾아 헤맨다.
- 유통기한이 지난 트렌드의 무덤
불과 몇 년 전, 교계의 모든 세미나와 단행본을 장악했던 키워드는 ‘메타버스’였다. 가상 세계에 성전을 짓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교회가 문을 닫을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팬데믹 때는 영상 편집과 유튜브 알고리즘이 구원의 통로인 양 떠들썩했다. 하지만 지금 그 콘텐츠들은 어디에 있는가.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는 먼지 쌓인 장비와 활용법을 잊은 매뉴얼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 그 자리를 ‘AI 목회’가 채우고 있다.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기술의 꼬리만 쫓는 교회는, 유행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느라 정작 걸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 불안이 낳은 ‘실버 불릿(Silver Bullet)’ 증후군
교회가 트렌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불안’과 ‘조급함’이다. 숫자가 줄고 영향력이 약해지니, 단번에 상황을 역전시킬 마법 같은 해결책, 즉 늑대인간을 한방에 잠재울 수 있었던 마법의 탄환인 ‘실버 불릿’을 원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문제라서 교회가 쇠퇴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대로 ‘사는 사람’이 드물어서 외면받는 것인데도, 지도자들은 자꾸만 더 세련된 도구 탓을 한다. 도구가 나빠서 농사가 망한 것이 아니라, 농부가 땅을 사랑하지 않아서 망했다는 진실을 대면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 방법론(How)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존재(Who)
교회 세미나들이 다루는 내용은 대개 ‘어떻게(How)’에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모을까,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할까, 어떻게 하면 AI를 쓸까. 하지만 기독교의 본질은 ‘누구(Who)’이며 ‘어떠함(What)’의 문제다. 더 나아가서 그것이 ‘왜(Why)' 우리에게 필요한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제자도를 ‘값비싼 은혜’라고 불렀다. 그것은 화려한 기술이나 트렌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다. 삶이 빠진 방법론은 알맹이 없는 포장지와 같다. 포장지가 아무리 화려해도 배고픈 이웃을 먹일 수는 없다.
- 다시, ‘살아냄’이라는 지독한 정공법으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살아내는’ 용기다. 인공지능이 설교문을 대신 써주고 메타버스가 예배 장소를 제공해도, 고통받는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는 ‘육체의 현존’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기독교는 정보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종교이며,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전수다. 트렌드라는 이름의 헛발질을 멈추고, 다시 가장 투박하고 느린 ‘살아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당신의 신앙은 지금 최신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래된 복음을 오늘로 살아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