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은 메꿀 영역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빈자리, 그 거룩한 허기

by 강훈

- 종교가 파는 ‘감정적 해독제’의 함정

“예수 믿으면 공허함이 사라진다”는 말은 강단에서 가장 흔하게 팔리는 달콤한 사탕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말만큼 신앙의 실체를 왜곡하고, 멀쩡한 신자를 ‘믿음 없는 사람’으로 자책하게 만드는 거짓말도 없다.

많은 설교자가 공허함을 ‘하나님이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그 구멍이 메워지고 영원한 만족이 찾아올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독실한 신자도 문득 찾아오는 허무에 몸을 떨고, 기도가 끝난 뒤에도 쓸쓸함은 남는다. 심지어 그렇게 말한 설교자도 설교가 끝난 후 그 공허함에 끙끙댄다.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죄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유한한 인간’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신앙을 공허함을 지우는 지우개로 쓰는 순간, 우리는 자기 삶의 깊이를 들여다볼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가는 ‘숨 쉬는 공간’

공허함은 24시간 내내 머무는 안개가 아니다. 그것은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삶을 오간다. 때로는 성취의 정점에서, 때로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조차 불쑥 찾아온다. 이 간헐적인 허무는 우리에게 “지금 너의 삶이 보이는 것이 전부냐”고 묻는 영혼의 질문이다. 쉬지 않고 빈자리가 없이 무언가로 채워져야만 안심하는 강박이야말로 오히려 병적인 상태다. 공허한 시간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내면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올 ‘빈자리’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 채우는 신앙에서 ‘머무는 신앙’으로

신앙은 공허함을 메우는 콘크리트가 아니다. 오히려 그 텅 빈 공간도 괜찮게 머물 수 있게 하는 ‘용기’에 가깝다. 공허함을 억지로 지우려 할 때 사람들은 중독에 빠지거나, 광신적인 종교 행위에 매달린다. 하지만 진짜 신앙의 살아냄은 그 허무를 견뎌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마주한 것은 화려한 채워짐이 아니라, 지독한 고독과 그 고독을 뚫고 나오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었다.


- 공허함을 껴안는 태도

결국 우리는 공허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공허함이 찾아올 때 그것을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내가 지금 인간답게 존재하고 있구나”라고 인정하면 그만이다. 신앙의 능력은 모든 욕망이 해소된 ‘가짜 만족’에 있지 않다. 모든 욕망의 해소는 애초에 불가능하며 내 부족함을 다 채우는 것도 그렇다. 신앙의 능력은 삶의 허무와 쓸쓸함을 있는 그대로 껴안으면서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단단한 마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