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수고를 보물처럼 여기는 신앙
- 메달리스트 옆에 나란히 앉은 ‘밥심’의 주역들
최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선수단을 격려하는 청와대 오찬 자리는 여느 때와 달랐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메달리스트들 사이로, 대회 기간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의 식사를 챙겼던 급식지원센터 조리사들이 당당히 초청받았다. 대통령이 메달의 영광만큼이나 그 영광을 뒷받침한 아름다운 섬김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름 없는 헌신’에 대한 뒤늦은 감사이자 예우였다.
- ‘주연’만 기억하는 교회의 인색한 시선
세상의 정치가 이토록 따뜻한 시선을 보여줄 때, 정작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의 강단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거나 금메달을 목에 건 ‘주연’들의 화려한 간증으로 도배된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칭송받지만, 주일 아침부터 주방에서 땀 흘리며 밥을 짓고 아무도 모르게 교회의 구석구석을 돌보는 이들의 수고는 ‘당연한 봉사’라는 이름 아래 가려지기 일쑤다. 우리는 은혜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은혜를 삶으로 일구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땀방울에는 너무나 인색했던 것이 아닐까.
- ‘밑바닥 사역’이 공동체를 살리는 진짜 힘이다
신앙의 본질은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생존을 돕는 투박한 손길에 있다. 올림픽 조리사들이 선수들의 컨디션을 위해 매일 새벽 불 앞에서 고생하며 애썼듯, 기독교의 살아냄 또한 누군가의 허기를 채우고 삶을 지탱해 주는 아주 일상적인 행동에서 증명된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교리보다 더 강력한 복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뒷바라지다. 이런 ‘보이지 않는 섬김’이야말로 교회를 지탱하는 진짜 뿌리이자, 기독교가 회복해야 할 진짜 품격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하기 전에(세계관이라고 말하기도 난센스지만) 당장 교회 스스로 앞가림부터 해야 할 것이다.
- 낮은 곳의 수고를 먼저 알아보는 눈
결국 우리가 회복해야 할 주권은 성공의 제일 꼭대기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헌신하는 이들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예민한 시선과 마음에 있다. 세상은 결과물과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신앙은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과정과 진심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 청와대 식탁의 주인공이 된 조리사들처럼, 우리 공동체에서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이 가장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화려한 메달의 광채만 쫓고 있는가, 아니면 그 메달을 가능하게 했던 누군가의 거칠어진 손마디를 먼저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