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헤다 Aug 26. 2022

하는 일에 의미 부여하기

가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소중할 수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해봤다. 가벼운 막노동부터 구두닦이 대리운전 같은 일도 하고 영업직의 대표 격인 보험설계사도 해봤다. 수년 동안 떡볶이 장사도 했다. 프랜차이즈를 이루겠다며 큰맘 먹고 시작한 떡볶이 가게, 물론 보기 좋게 망했지만.. 음악 관련 일을 하면서 프로듀서도 해보았다. 그 외에도 알바 차원으로 했던 일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술집 서빙, 커피숍 서핑, 신문배달, 우유배달, 택배 상하차 작업 등의 일들도 해봤다. 그중에서 어떤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고 어떤 일이 별로였던 일이었을까?  


 그 차이는 일 자체에 있지 않다. 그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 일인지가 그 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내가 가치 있는 의미를 부여하면 아주 사소한 일도 위대한 일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로 하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헤어디자이너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같은 내용을 다루었다. 누군가에게는 미용실에서 일하는 그냥 ‘미용실 언니’ 일수도 있지만 분명하게는 다른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했던 일도 다시 의미부여를 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벽돌을 나르고 쌓는다면 그 일은 말 그대로 '노가다'다. 하지만 어떤 건축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또 다른 영역이 된다. 아주 오래전에 했던 일이지만 내가 벽돌을 날랐던 그 건물을 보면서 충분하게 흡족할 수 있다. 


 구두닦이는 2년 정도 했다. 구두를 거둬들여 가져오는 역할인 일명 "찍새"로 6개월을, 그리고 1년 6개월을 구두를 닦고 고치는 일을 했다. 구두닦이는 손도 더러워져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작고 네모 난 상자 같은 곳에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한다. 다른 사람이 신는 신발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고 일을 하는 구두닦이가 뭐 얼마나 좋아 보이겠나?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고, 그 사람의 대인관계와 업무를 위해서 내가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구두닦이를 할 때에는 유흥이나 허영을 부릴 여유가 없다. 그 또한 가치다. 구두닦이를 하기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신나게 놀았다. 하지만 구두닦이를 한 이후에는 그렇게 편하게 쳤던 당구도 치지 않았다. 당구대 위에 손을 올려놓는 것조차 불편했다. 그 덕에 난 차곡차곡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에 새마을금고의 여직원 중 한 사람은 나를 아주 호감 있게 대해주었다. 그 여직원은 구두약으로 까맣게 된 손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실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가치와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난 구두닦이를 했던 그 시간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내 인생의 자산이기도 하고, 심지어 구두 형태만 살펴봐도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일 정도였다. 


 대리운전도 술에 취한 누군가를 대신해서 운전하는 것이지만, 어떤 한 사람의 생명을, 아니 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음식점이나 술집 서빙도 그 일 자체만 생각하면 별로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 내가 봉사한다는 가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소중할 수 있다. 신문배달도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로, 우유배달은 그 가정의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로 생각한다면 그 가치는 달라진다.  


 새벽부터 길을 쓸고 있는 청소부를 본다. 우리 아파트에도 청소하는 분이 계시고, 회사의 건물에도 청소용역에서 청소를 한다. 누군가는 그냥 청소하는 사람이지만 도시를 깨끗하게 하는 아주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다. 


 우리 아파트의 경비원은 그곳에 살고 있는 내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감사하고 의미 있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간혹 뉴스에서 보게 되는 경비원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식하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집과 가족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비아저씨를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월급 받기 때문에 자신의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수준 이하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일에 가치와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운전하면서 앞에 있는 승합차 뒷 유리의 광고 문구를 보게 되었다. "시원하게 뻥 뚫어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나중에 커서 막힌 곳을 뻥 뚫어주는 일을 하겠다'라고 다짐하지 않는다.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 집의 변기와 싱크, 하수구 등이 죄다 막혀서 역류할 것이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그 일을 누군가 해주기 때문에 지금 나와 당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을 선택하고, 또 그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부러워하는 그 대상도 나름대로의 고충과 어려움과 불편함들이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상황들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상황도, 다른 누군가도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불편한 일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충분하게 바꿀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부여는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로 대신해 줄 수 있는 것,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삶이 아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똥이 항상 더러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