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선인장

by 김라희

5월 9일 일요일,


화창한 아침을 거울삼아 아침부터 브런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비록 한 시간뿐이었지만 혼자 차분히 앉아 타인의 일상과 생각을 엿보는 시간에 행복감이 충만히 느껴졌다. 나와 생활 패턴이 다른 남편은 글 읽느라 보낸 한 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일어나 나왔다. 대뜸 아침 인사도 없이 날씨 너무 좋다고 나가 놀자고 한다. 조용히 공원 가서 커피 한 잔들고 걸었으면 싶었는데, 그이는 느닷없이 가든 센터에 가잖다. "뭐 화분 사려고?" "아니, 그냥 식물 구경 가자. 그리고 커피 한 잔 하고 오면 될 것 같은데, 어때?" 길게 걷고 싶은 마음을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남편이 가자는 가든 센터로 향했다.


영국 오월 날씨는 변덕 끝판왕이다. 해는 다른 때보다 자주 뜨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거나, 정신 차리기 힘든 바람이 분다거나, 심하면 우박이 내려치니 외출하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좀 어렵다. 오늘도 여지없다. 차 창을 열고, 음악 감상하며 별 것 아닌 수다를 나누며 가고 있는데, 저 앞에서 두터운 먹구름이 밀려온다. 남편은 아침부터 밤까지 해가 내리쬐는 곳으로 이사가 버리자며 새롭지도 않은 불평을 내뱉는다. 가든 센터를 구경하는 내내 해와 구름은 우리가 원치 않는 숨바꼭질 하느라 바쁘고 난리다.


가든 센터 안에 웬일로 선인장이 가득하다.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사이즈도 화기도 다양하다. 남편은 그 앞에 한참을 서 있는다. 다른 화분을 구경 중인 내 손을 잡아끌며, 선인장 좀 보라고 성화다. 본인이 키우던 선인장 이야기까지 한참을 늘어놓으며. "몰랐네, 선인장 좋아하는 줄은..." 날카로운 가시로 둘러싸인 선인장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게다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걸 왜 키우지 했으면 모를까. 그러다 이리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선인장도 그렇게 귀엽고 이쁠 수가 없었다. 길쭉한 기둥 모양, 생선 지느러미 모양,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사람 모양, 뾰족한 가시 사이에 핀 소담한 꽃, 길고 억센 가시,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가시 등 마음을 잡아끄는 선인장의 매력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선인장에 빠져 두서너 개 사갈까 싶다. 키우고 싶은 것 골라 데려가자고 하니, 좀 기다려보라고 한다. 난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사는 성향이고, 남편은 다음에 다시 오더라도 정확히 알고 사려는 신중한 성향의 사람이다. 식물 킬러인 내게 "선인장이 키우기 쉽다고 해도 소중한 생명인데 잘 알아보고 데려가야지." 하는 남편의 말이 맞지 싶어 그러자 했다. 야외 카페로 나가 스콘에 난 얼그레이, 남편은 카페라테를 한 잔 하며, 우리가 여태까지 먹어본 가장 맛있는 스콘 집은 어디였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래도 해가 쨍하게 내린다. 우리 함께 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새로 발견하는 취향이 남아있다.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그런지 가끔 그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때가 있다.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남편을 다 알 수 있다 착각할 수 있는지. 견해의 간극을 채우고 인정하느라 참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으며 지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리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지. 선인장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다 이쁘다 미소 짓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아기자기한 면모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