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대 사회의 의학은 전문지식을 만들고, 정보의 독점, 권위주의적 모습을 만들었다. 소수만이 정보를 얻고,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 정보는 환자와 의사 간의 힘의 권력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권력의 구조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소수에게 독점되었던 정보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유튜브와 같은 개인방송의 발달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여주고, 이를 사람들은 소비하는데 의사도 그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때론 병원의 홍보수단으로, 혹은 본인의 어필 수단으로써 건강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환자나 대중은 이러한 정보를 소비하고, 본인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병원을 평가하고, 의사를 선택하고 쇼핑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사가 더 명의인가, 더 잘 서비스하는 병원은 어디인가 등 더 이상 권위적인 존재가 아닌 돈으로 소비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의사는 보다 친근하게 환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반면, 이러한 동등한 관계는 전문가의 말에 신뢰도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본인의 목소리를 더 주장하는 상황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편, 의학에도 AI 기술 등이 도입되고, 병원에도 로봇이나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의 변화가 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의 대면 상황에서 의사의 판단 하에 사람 간의 직접적인 온기를 전달하는 시스템이 아닌, 매체를 통한 판단과 소통의 모습들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병원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오히려 소통의 창구를 확대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온기가 부족한 차가운 모습을 양산하게 될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산적으로 처리하고 기록하고 관리할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계를 조작하고, 기록하는 작업 또한 환자를 돌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서 결국 환자를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쪼개서 행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기술이 발전하면 이러한 시간자체를 줄이는 획기적인 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오히려 더 대면과 소통의 시간을 줄이는 듯 보이기도 한다.
환자는 의사와의 심리적 거리감은 가까워지고 권력구조는 평평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그 속도를 가속화하게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병원에서 환자가 실제로 대면하게 되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을 보며 어렴풋이 품었던 생각과 실제와의 차이에 괴리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비단 환자 수가 많고 적음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더 발전된 과학기술로 확인해야 할 정보들, 검사들, 기록하고 남겨야 하는 전산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신입 간호사일 때 주치의에게 환자 통증을 노티하고 받은 답변 중에 가장 황당했던 답이 있는데, ‘손 잡아주세요’였다. 잘 모르는 신입간호사라고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였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손을 잡아주라는 뜻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 번 더 가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들어주라는 이야기를 내포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