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마우이섬 할레아칼라 일출
고백하건대 난 와이키키 해변이 하와이에 있는 줄 알았다. 이게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한 게.. 와이키키 해변이 있는 섬은 정확히는 오아후 섬이며 오아후 섬은 하와이 제도 내에 있는 6개의 섬(카우아이, 오아후, 몰로카이, 라나이, 마우이, 하와이 섬) 중 하나이다. 그러면 맞는 말인 건가 틀린 말인 건가..
몇 년 전에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는 마우이섬과 오아후 섬. 마우이섬은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날 것의 매력이 있고 오아후 섬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와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우이섬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바로 할레아칼라 정상에서 보는 일출이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풍경',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곳' 등의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는다.
마우이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할레아칼라 일출이다. 마우이섬 남쪽 대부분을 아우르는 할레아칼라 산은 해발고도가 거의 3,000미터에 육박하는 굉장히 높은 산이다 이런 건 구글 위성지도로 봐야 제 맛.
하지만 할레아칼라 일출을 보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할레아칼라 국립공원 입장 티켓을 예매해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입장료가 무료였는데, 계속 몰리는 관광객 통제가 어려웠는지 17년 2월부터 유료 입장권을 제한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방문 2개월 전 예약해야 하며 예약 요금은 1.5달러 하루에 150장만 판매한다고 하니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금방 품절이다. 예약은 아래 주소로 접속하면 된다.
https://www.recreation.gov/ticket/facility/253731
혹시 여행일은 다가오는데 아직 예약을 하지 못했다면? 방문 이틀 전, 예매 가능한 표 40장이 보너스처럼 추가 배정되니 이때를 노리면 된다.
예약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이제 정상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근데, 할레아칼라 산이 해발 3,000미터라 정상까지 오르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고, 또한 할레아칼라 국립공원 크기가 거대하고 그 주변에 숙소가 딱히 없기 때문에 또 숙소에서 국립공원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이러다 보니 숙소가 어디에 있든 새벽 6시에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는 대략 3~4시간 전에 숙소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머문 숙소는 공항에 가까워서 할레아칼라 정상까지 차로 가는데만 약 80분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어났다. 새벽 3시에.. 하와이는 연중 기온이 비슷비슷해서 대략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데 새벽이라고 다를 건 없다. 낮보다 조금 선선하긴 해도 밤에도 역시 반팔이나 반바지로 돌아다녀도 된다.
그런데!!! 새벽 6시 해발 3,000미터짜리 산 정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니 뭐.. 이렇게 더운데 산이라고 다르겠어?라고 생각하면 완전 오산. 나도 우습게 여기고 가벼운 바람막이랑 패딩만 챙기고 정상에 갔는데 이건 뭐 모자에 장갑에 목도리에 두꺼운 오리털 잠바까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새벽의 할레아칼라 산 정상은 진짜 무진장 춥다. 그냥 있어도 추운데 좋은 자리를 맡고 해가 뜰 때까지 그리고 뜨고 나서도 한참을 자리에 서서 봐야 하는데 허세나 객기는 잠시 내려두고 따뜻한 옷을 챙겨두자
아무튼..
새벽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전 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다. 그리고.. 정상까지 가는데 목이 마르거나 배고플 수 있으니 전 날 마트 같은 곳에서 생수와 간단한 먹거리 등을 사자. 정상에 가도 아무것도 없다. 먹을 걸 팔지를 않는다 ㄷㄷ
새벽 도로는 한산하다. 중간중간 가로등도 없어서 하이빔을 켜고 가야 하는 길도 있다. 만약 나와 같은 방향으로 주야장천 가는 차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차를 할레아칼라 정상에서 볼 수 있다. 숙소에서 할레아칼라 오르막을 오르기 전까진 평지길이 계속 이어진다.
노란 동그라미로 표기한 바로 저 길 어둡지만 운전하기 좋다. 편하다. 문제는 할레아칼라 입구 표지판을 지나면서부터.. 슬슬 길이 경사지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입구를 지나 조금 더 가다 보면 가로등이 사라지고 주변이 어둠에 빠진다. 그러면서 서서히 창밖으로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쏟아지기 시작한다
차를 잠시 세워두고 내렸는데 난 그때의 기분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랄까 차에서 내려 하늘을 바라봤는데 나도 모르게 한순간 "으악" 하면서 몸을 수그렸다.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말 그대로 내개 한 껏 쏟아질 듯 쨍~~ 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에 제대로 담지 못했지만 좌측의 사진과 대략 비슷한 느낌이었다.
좀 더 오랫동안 별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계속 지체되기에 하는 수 없이 다시 정상으로 출발한다. 길은 점점 험해진다. 미쳐가지고 좌우로 날뛰기 시작
요 구간이 되면 진짜 운전자는 돌아버린다. 사방팔방 어두컴컴하지 해발 고도는 점점 올라가지 길은 구불구불 토 나올 것 같지. 근데 천천히 가면 그다지 어렵진 않다. 위험하지도 않고.. 숙련된 운전자라면 휘릭 휘릭 갈 수 있다.
다행히 내가 갈 때는 앞에 차가 없어서 내 맘대로 마구 달릴 수 있었다. 빨리 달리는 것 같지만(좌) 사실은 시속 40km도 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른쪽 밝을 때 사진에서 보듯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요 별다른 난간조차 없다.
우여곡절 끝에 새벽 5시경 정상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몇 걸음 옮기니 어딘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저기가 명당이구나?!라는 생각에 같이 끼어들어가 서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문자 센터 자리.
할레아칼라의 일출을 '여기서 봐야 해!'라는 법은 없다. 아무데서나 봐도 다 잘 보이긴 하는데.. 주요 포인트는 여기 방문자 센터나.. 사진 맨 위에 보이는 산봉우리나.. 아니면 차를 타고 좀 더 올라가면 보이는 red hill에서 보면 된다.
일단 방문자센터 앞쪽에 자리 잡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무지하게 많았지만 다들 고요하게 기다리는 중
장엄하다. 해가 뜨기 전인데도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풍경 바로 앞 쪽을 사진에 담아본다. 밝기를 조정해보니 이런 모습이 보인다. 삭막하다. 어디 우주 행성에 착륙하면 이런 풍경일까? 해발 3천 미터란 식물이 살기 매우 혹독한 조건인가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는 조금씩 떠오른다. 뭉게구름이 약간 해를 가리긴 했지만 그 구름을 뚫고 해가 삐져나오고 있다. 뭔가 장엄한 BGM을 깔아야 할 것 같다 부앙.. 부어어엉 구어어어 엉 궁장 장장장
약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해가 구름을 뚫고 올라오기 까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춥다. 진짜 춥다. 장갑을 안 가져온걸 진짜 후회했다. 아무튼 동그란 해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태양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천천히 떠올라 대지를 따스하게 비춘다. 완연히 구름 위로 솟은 태양을 뒤로하고 (추워서) 방문자 센터 안으로 들어가 봤다. 이미 추위를 피하러 들어온 사람들로 북적임 간단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방문자 센터에서 보는 일출은 여기서도 볼 수는 있는데 창문이 그리 깨끗하진 않아서 시야가 많이 더럽다 (...)
방문자 센터 옆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풍경. 해발 3천 미터의 위엄 구름보다 높이 있다. 방문자 센터에서 나오면
이런 트레킹 코스가 나온다.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태양은 이제 완전히 솟구쳐 오른 상태.
멋들어진 일출을 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미 주차장엔 수 대의 차들이 일출을 뒤로하고 빠져나간 상태였다. 칼바람 맞던 새벽보다 훨씬 따스했다.
일출을 보았던 방문객 센터 뒤로 보이는 구름이 높이를 짐작케 한다. 하늘 위의 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장면이다.
방문객 센터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할레아칼라 정상으로 향해본다. 할레아칼라 정상인 Red Hill에는 방문자 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방문자 센터에서 이곳을 연결하는 도로 구비구비진 도로 너머로 지상이 보인다. 완전 다른 세상 같다. 정상에 지어진 이 건물은 추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 좀 더 따스하게 일출을 볼 수 있을 듯
해발 3,055미터 인증패. 예전에 독일 가르미슈를 갔을 때와 비슷한 높이다. 대한민국 그 어딜 가도 없는 해발 3천 미터의 경험.
안에 들어가면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무슨 거대 비행기를 탑승한 느낌. 할레아칼라의 전체적인 관광지도(하단 좌) 맨 오른쪽 안전에 관한 항목을 읽어보자.. 지랄 같은 날씨에 대비하고 고산병 조심하고 해 따가 우니 모자 나선 글라스 챙기고 물 많이 마셔라.. 등등
정상에서의 황홀한 경험을 마치고 이제 슬슬 3000미터 아래로 내려가 본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올라올 땐 몰랐는데 여기 꽤나 위험한 길이었구나 ㄷㄷ 난간 하나 없다. 해발 3천 미터인데.
차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길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착륙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갑자기 거대한 구름이 몰려와서 급히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름을 찍어보았으나 그 느낌을 담는데 실패 ㅋㅋ
어느 정도 내려오면 상쾌한 숲길이 보인다. 산을 오르내리는 도로는 상태가 매우 좋다. 깔끔하고 상한 곳도 없고 입장료가 올바르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갈 때 더 여유롭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점점 지상에 가까워져 어느새 '땅에 닿았'다. 그리고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을 알리는 표지판과 조우..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 그토록 기대했던 할레아칼라 국립공원과 일출이었지만 사실 일출 자체는 생각보다 멋지지 않았다. 추위와 싸우느라 감동과 감흥이 덜 했을 수도 있고 구름 한 점 없는 장면을 기대했으나 하늘이 점지하지 않은 날이었을까 구름이 군데군데 끼어 있어 맑은 풍경을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해발 3천 미터에서 본 풍경과 내려오면서 본 풍경 그리고 특히 새벽에 올라가면서 마주한 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