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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Nov 18. 2019

사서 고생, 크로스핏 입문기(1)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곳


앱을 켜니 회원권 만료가 3일 남았다는 알림이 뜬다. 언제 또 시간이 이렇게 흐른 거지.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드라마틱한 신체적 변화는 없었지만 그간 운동을 하며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크로스핏을 시작하기 전에는 남들 다 그러하듯 '운동 좀 해볼까?' 하는 마음에 회사 근처 헬스장을 먼저 등록했다. 트레이너의 별다른 지도 없이 러닝머신이나 자전거 좀 타고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기구 운동도 깨작거리듯 했다.


이 정도만 해도 뭔가 뿌듯했고 헬스장에 왔다는 사실 하나로 뭔가 운동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멀리서 몸이 잔뜩 화난 사람들이 덤벨 들고 바벨 들고 우락부락 운동하는 구역은 마치 신성불가침 영역이었다. 나 같은 헬린이들이 가면 뚜드려 맞는 곳이랄까


달리기나 하고 자전거나 주구장창 타니 운동이 재밌을 리 없었다. 시설을 탓하며 괜스레 헬스장을 3개월씩 3번을 옮겨 다녔다. 마지막 헬스장에선 속는 셈? 치고 PT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간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였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수업을 10회 계약했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헬스장을 기어 나오듯 빠져나왔다. 토할 것 같았다가 아니라 정말 토할 뻔했다. 기구 운동 몇 가지만 했는데도 온 몸은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뭔가 뿌듯함이 함께 찾아왔다. 제대로운동했다는 생각에.


둘째 날 트레이너는 나를 그 무서운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데려갔다. 울그락 불그락 근육이 터질듯한 굇수들이 모인 곳에 LV.1 헬린이가 가니 마치 모두가 나를 잡아먹을듯 노려 보는것 같았다. 남들은 벤치 프레스를 할 때 두꺼운 원판 몇 개를 팡팡팡 꽂아 넣는데 나는 원판 없이 바벨 하나 드는데도 쩔쩔맸다.


그래도 저 세상 공간 같던 곳에서 꾸준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덤벨 바벨 등 사용법을 익히고 뭔 소린지 하나도 몰랐던 벤치 프레스 데드 리프트 같은 있어 보이는 운동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거운 무게를 드는 나를 보며 굉장히 뿌듯했다. 이게 바로 운동의 재미인가?


그 후 10회를 더 추가로 받고 기구와 맨몸 운동에 대한 자세와 방법 등을 조금 더 익히기로 했다. 그리고 가격이 부담되어 그 정도로 PT를 마무리하고 '이 정도면 혼자 운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역시 PT는 돈으로 의지를 사는 거였다.


여러 가지 다양한 운동을 1:1 코칭을 통해 정확히 배울 수 있고 투자? 한 돈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헬스장에 (끌려) 나가 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PT는 마치 운동 보조제 혹은 유료템 느낌이었다.


PT를 끊자마자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일단 내 자유의지로 헬스장에 가야 하는데 이것부터 쉽지 않았다. 일단 가더라도 어지간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야 내가 하고 싶고 하기 편한 운동만 찾게 됐다. 운동 편식이다.


운동을 하는 도중에도 무리해서 무게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트레이너가 옆에 있었다면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옆에서 의지를 북돋아 '끄아아아아' 우렁찬 소리를 내며 한계를 넘어 좀 더 들었을 텐데. 이러다 보니 헬스장에 다닌 기간은 길어져도 운동이 쉬이 늘지 않았다. 그냥 기부천사가 되는 느낌? 그러던 도중 크로스핏이란 걸 알게 된다.


나와 같은 과정을 미리 겪은 지인이 추천해줬다. 한 번 다녀보라고. 자칫 지겨울 수 있는 헬스와 달리 너무 재밌고 뿌듯하다고. 그 전까진 크로스핏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도 '재밌다고' 하니 솔깃해서 근처 크로스핏 박스(크로스핏을 배우는 장소를 박스라 한다)에 찾아갔다.


BOX라고 부르는 곳의 첫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별의별 운동기구가 가득한 헬스장과는 사뭇 달랐다. 중앙에는 검은색 매트로 된 넓은 운동장 같은 공간이 있었고 구석구석에 헬스장에서 보았던 각종 덤벨 바벨 로잉머신 등 낯익은 운동장비들과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장비들도 있었다. (이상한 상자와 고무밴드, 동그랗고 커다란 볼 등)


운동 한 타임이 끝날 때쯤 찾아갔는지 여기저기 역도 바벨 같은 것들과 이상한 나무 박스들이 놓여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이 대자로 뻗어 나뒹굴고 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나 여기 나갈래


온몸의 세포가 바싹 곤두서며 이 곳은 위험해, 빨리 나가!라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오늘 예약하신 OOO 님이 신가요?'라고 말을 건넨다. 저승사자를 보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일까. (계속)


https://brunch.co.kr/@lainydays/108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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