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 적응기(1)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나 사건은 "난제"라 부른다. 수학계에서 유명한 난제로는 세계 7대 난제가 있다. 이는 하버드 출신 수학자들이 만든 단체인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 2000년 5월에 제시한 것으로 21세기 수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한 문제당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있지만 극악무도한 난이도로 인해 '푸앵카레 추측'만을 제외한 나머지 6개의 난제(P 대 NP 문제, 양-밀스 이론과 질량 간극 가설, 내비어-스톡스 방정식, 버치와 스위 너 톤-다이어 추측 , 호지 추측)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굳이 머리 아픈 수학 난제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은 온통 난제로 가득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탕수육 부먹 vs 찍먹' 논쟁이며, '화장실 휴지 방향' 논쟁도 있다. 거참 대충 먹고 대충 뜯어 쓰면 되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지만, 심심찮게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는 걸 떠올리면 취향이 강한 신념으로 전이될 경우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가를 새삼 느낀다.
운동 좋아하는 헬스인들 사이에서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난제가 있다. 바로 '중량 vs 자극' 논쟁이다. '근성장'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것인데 (심한 표현으로) 중량충들은 무거운 중량을 들어야만 근육이 성장할 수 있다고 하고 자극충들은 적은 무게로도 고립을 잘해서 운동을 수행하면 충분히 근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굳이 '충'이라는 표현을 붙인 이유는 중량만 고집하고 자극만 고집하는 사람들을 일컫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량이 중요하냐 자극이 중요하냐는 운동 목적이나 취향에 따라 갈라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 정답과 오답의 문제가 아니다. 고중량을 통해서도 충분히 근성장을 이룰 수 있고, 고 자극을 통해서도 충분히 근성장을 이룰 수 있다. 도달하는 과정이 조금 다를 뿐.
극단적으로 나누면 무거운 무게를 드는 것이 1차 목표인 파워 리프터들은 고중량을 선호할 것이고, 아름답고 커다란 근육을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인 보디빌더들은 고 자극을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을 혼합하는 파워빌더라는 개념도 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짬짜면 등..)
그렇다면 크로스핏에서는 어떤 난제가 있을까? 크로스핏을 처음 시작하면 익혀야 할 운동 자세도 너무 많고 (파워클린, 스내치, 클린 앤 저크, 덤벨 스내치, 행 파워클린.. 꾸에에에에엑!$**$!@$*@#*%#%@!$!) 와드를 따라 하기도 벅차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스레 중량과 자세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한다. '무게를 더 올려볼까? 아니야 좀 더 올리면 자세가 엉망이 될 것 같아'
물론 누구나 알고 있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자세라는 걸. 똑같은 무게라도 자세에 따라 힘이 덜 들 수도 있고 바른 자세를 통해 부상을 방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경쟁'이라는 변수가 생기면 별안간 '욕심'이 추가된다.
웨이트의 경우 누군가와의 경쟁이라기 보단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물론 헬스장에서 덩치는 비슷한데 무게를 더 많이 드는 사람이 보이면 왠지 모를 경쟁심이 생기고 이것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드는 무게를 어디에 기록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하게 무게를 올리기보다는 바른 자세를 몸에 먼저 익힌 뒤 무게를 올리는 것이 손쉽다.
하지만 크로스핏의 경우 박스 내 모든 사람의 기록(무게와 시간)이 칠판에 공개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거의 공개 처형 수준의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기록 공개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더 열심히 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자칫 무조건 남들보다 빠르게 끝내고 무겁게 드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 자세가 와르르 무너지기 쉽다.
초보일 때는 어쩔 수 없이 낮은 중량에서 자세를 익히고, 이게 숙달되면 중량을 올리겠지만 이런 과정이 조금씩 반복되다 보면 전후관계가 바뀌기도 한다. 일단 무게를 올리고 그 무게에 맞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부먹과 찍먹, 그리고 휴지 방향, 또는 자극과 중량에 절대적인 정답이 없듯, 크로스핏의 자세와 무게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자세에 대한 정확한 숙지와 숙달 없이 무게만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정체가 오고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박스에 있는 코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PT만큼 회원 한 명 한 명을 봐줄 수는 없더라도, 누구가 자세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무리하게 중량을 들려는 경우 아직 회원님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며 조언을 해주는 거다.
나도 초보 딱지를 떼고 무리 없이 무게가 쭉쭉 올라가던 시절 (물론, 지금도 한참 멀었지만), 기록에 눈이 멀어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원판을 바벨 양 옆에 팡팡 끼고 자신감에 넘쳐 와드를 시작하려고 할 때, 조용히 코치가 따라와 '그거 아직 무거 울 거에요 좀 줄이세요' 라고 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뭔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막상 줄인 무게로 와드를 하다 보면 무게 안 올리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태반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 무게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코치들이 알아서 또 반대로 조언을 해준다. '그 무게는 이제 좀 가볍지 않나요? 조금 더 무겁게 해 보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아무튼 자세를 먼저 완벽하게 숙달한 뒤 무게를 올리는 것도, 그리고 자세는 조금 완벽하지 않아도 무게를 올려가며 잡는 것도 다 좋다.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재미있게 운동하는 것이겠지.
다음 글에서는 크로스핏을 통해 나의 체성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인바디 수치를 보며 확인해보자. 과연 크로스핏을 통해서도 근육량을 늘리고 체지방을 떨굴 수 있을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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