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와이너리 투어
정말? 파리에 갔는데 에펠탑도 안 봤어?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꼭 봐야 하는 것이 있고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봐야 하고, 뉴욕에 가면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나쯤은 관람해야 하며, 스위스에 가면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정해준 것도 아닌데 의례 다들 그렇게 한다.
물론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야 해?'라는 의문을 갖는다면 꼭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된다. 남들이 모르는 혹은 가보지 못한 나만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을 간다고 누가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러 가거나 보러 간다면 그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펠탑을 안 보고, 뮤지컬을 관람하지 않고, 융프라우요흐를 오르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위와 같이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포르투에서는 무엇을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 않게 될까?
정말? 포르투에 갔는데 그것도 안 해봤어?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에는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정말 많다. 하지만 포르투에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와이너리 투어" 다.
와인은 많이 알수록 더 맛있는 술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고 마실 때의 매너와 같이 곁들일 음식까지 고려한다면 쉽사리 손이 가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결정적 순간 단 한 번의 아는 척 혹은 있어 보이는 척을 위해 와인에 대해 경험을 할 필요는 있다고 가볍게 생각해본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포트와인'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쉐리, 마데이라 와인과 함께 세계 3대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와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정강화란 일반 와인(12%)보다 알코올 도수가 조금 더 높은(18%) 것을 일컫는다.
그 옛날 영국이 프랑스랑 100년 전쟁을 하면서 서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는데, 그간 프랑스산 와인을 잘 마시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리니 영국의 와인 애호가들은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눈을 돌린 이 바로 포르투갈이었다.
그런데 포르투갈에서 영국으로 배를 타고 건너간 와인들이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고민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와인에 브랜디를 섞어 이 문제를 해결했고 이것이 바로 포트와인의 시초가 되었다.
지금도 포르투 동루이스 강에는 그 옛날 영국으로 열심히 포트와인을 실어 나른 배가 고스란히 재현되어 강 주변을 유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유명한 포트와인의 양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곳은 포르투의 유서 깊은 빌라 데 가이아 지구로 가면 된다. 이 곳에선 포르투의 대표적 양조장을 볼 수 있는데 Calem, Sandman, Graham, Tayor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양조장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와인의 양조과정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여행상품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포르투의 그 유명한 '와이너리 투어'가 되겠다.
이 4곳의 양조장은 사실상 와인이나 와이너리 투어의 품질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그때 그때 자신의 여행 스케줄에 맞는 양조장의 투어에 참여하면 된다.
내가 선택한 양조장은 Calem인데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내 여행 스케줄에 가장 잘 맞았을 뿐이다. 다른 양조장의 와이너리 투어는 한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고, Calem은 단 몇십 분만 기다리면 바로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이 바로 Calem의 로비. 낡은 겉모습과는 달리 안은 굉장히 세련된 모습이며,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양조장 안을 시원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Calem이라고 쓰인 거대한 오크통이 투어에 대한 설렘을 가중시킨다.
로비에서 투어 티켓을 구입하고 입장시간까지 기다리다 보면 이윽고 가이드가 모이라고 얘기한 뒤 사람들을 이끌고 양조장 안으로 들어간다. 투어는 영어 버전과 포르투갈 버전 두 개로 되어 있으니 언어 선택에 유의하자.
양조장의 입구는 마치 박물관과도 같은 느낌인데, 포트와인과 Calem 양조장의 역사에 대해 약 5분 정도 설명을 듣게 된다. 그리고 짧은 설명이 끝나면 비로소 본격적인 와이너리 투어가 시작된다.
와인 창고 안에는 포트와인을 저장 중인 대형 오크통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사진으로는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중앙의 사람과 비교해보면 대략 감이 올 것이다.
오크통의 겉면에는 알 수 없는 알파벳과 숫자가 표기되어 있는데, 와인의 온도와 양을 표기 중으로, 워낙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명패로 개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와인을 담고 있는 오크통은 단순히 저장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크통은 와인과 섞여 오랜 시간을 지내며 그 향과 색이 와인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지닌 와인을 탄생시킨다.
가이드를 따라 거대한 오크통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작은 통에 담긴 와인도 볼 수 있다. 투어 자체는 길지 않다. 와인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과 몇 가지 재미난 일화를 듣다 보면 금방 끝이 난다. 그리고 와이너리 투어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시음이 남아 있다.
와이너리 창고를 빠져나오면 커다란 홀로 들어오게 되는데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와인과 와인잔이 세팅되어 있는데 인당 두 잔의 와인이 돌아간다.
바로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 당연히 투어 비용에 포함된 것이니 걱정 말고 마시면 된다. 와인잔과 함께 Calem에서 생산한 와인에 대한 설명 책자도 제공되고 테이블마다 직원이 배정되어 각각 와인에 대한 짧은 설명과 마시는 법 등을 알려준다.
순식간에 시음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테이블에는 모르는 사람과 함께 앉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무슨 상관이랴. 여기서는 다들 반갑게 인사하고 잔을 부딪히는 좋은 여행 동반자일 뿐이다.
평소 와인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이 순간만큼은 와인 애호가 마냥 멋들어지게 한 잔 손에 들고 천천히 와인의 향과 맛을 음미해본다. 포트와인의 독특한 맛이 입안과 혀를 감돌고 시큼하기도 하고 쓰기도 한 그 맛에 약간 얼굴을 찌푸려 보지만 몇 모금 마시니 이내 포트와인의 매력에 빠져 나머지 한 잔도 금세 비우기 마련이다.
시음을 하고 난 뒤 마음에 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맘에 드는 와인 병을 골라 구매하면 된다. 시음장의 한쪽 벽면엔 판매용 와인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커다란 와인뿐 아니라 백 미리 단위의 중간 크기의 와인도 팔고 아예 50ml짜리 미니어처 와인도 팔고 있으니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포르투의 와이너리 투어가 특별한 것은.. 뭐랄까 단순히 보고 먹는 건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해봤고.. 무언가 그 고장 특유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해봤다는 뿌듯함이 담겨있달까.. 보고 듣고 맛보는 오감이 만족스러운 종합 문화 체험을 했다는 뿌듯함이랄까..
아무튼, 포르투 여행을 가신다면 와이너리 투어는 정말로 꼭 추천합니다.
포르투에 더욱 가까워지는 법, 와이너리 투어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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