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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Jan 17. 2016

중세시대 고성에 머물다

남프랑스의 작은 보석, 에즈 빌리지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다. 자고 일어나면 기술이 바뀌었고, 문화가 바뀌었고, 유행어가 바뀌어 있다. 화살의 속도는 현대사회의 변함을 묘사하기엔 너무나도 느리며, 총알로도 그 속도를 실로 따라잡기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빠른 변화의 흐름 속에도, 마치 거대한 바위와 같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본인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오늘 소개할 남프랑스의 에즈 빌리지도 바로 이와 같다 할 수 있다.




남프랑스의 세계적 휴양지 니스에서 동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에즈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해발 400m에 위치하고 있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대부분 니스 시내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기차보다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하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기차를 탈 경우 니스 중앙역에서 에즈 Mer Sur역까지 간 뒤 에즈 빌리지를 가기 위해서는 걸어서 1시간을 가거나  또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해발 400m에 위치한 에즈 빌리지를 가는 도중의 풍경이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 에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버스 안에서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에즈 마을에 내리면 (사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헷갈릴 법도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리면 된다) 정말 한적한 시골 동네가 눈앞에 펼쳐진다. 별다른 표식도 없고 표지판도 없는 이곳에서 에즈 빌리지를 어떻게  찾지?라고 고민이 된다면 고개를 45도 위로 젖히고 서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한 바퀴만 돌아보자. 돌다 보면 언덕 위에 위치한 고성이 눈에 걸릴 것이다. 그러면, 그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에즈 빌리지 입구에 있는 정류소에서 에즈 빌리지를 가려면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1박을 할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오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에즈 빌리지 안에 있는 호텔인 샤토에 자에서 1박을 할 계획으로 왔기 때문에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저 오르막을 올라갔다.


하지만 체력 없는 그대들 이어 걱정 마시라~샤토 에자의 경우 오르막을 채 오르기도 전에 리셉션이 있어서 벨만 누르면 알아서 호텔 크루들이 정상에 있는 호텔까지 그대의 무거운 짐을 옮겨다 준다. 그리고 당신은, 그저 산보하듯 가볍게 호텔까지 가면 된다. 



에즈 빌리지를 소개하며 그 안에 있는 유서 깊은 호텔 샤토 에자를 논외로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여행기에서 일반 호텔을 소개한다는 것이 사뭇 이상해 보일 수 있으나, 에즈 빌리지의 가장 높고 깊숙한 곳에 숨겨진 이 호텔은 에즈 빌리지의 일부이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녹아든다. 


호텔에는 따로 체크인 로비가 없으며, 체크인 오피스가 있는데 겉보기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돌벽으로 감싸진 신비로운 공간으로 들어서면 마치 동굴 같은 공간 안에 아득하게 자리 잡은 사무실에서 매너와 배려, 신사 다움이 넘치는 직원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면 직원은 호텔 안쪽에 있는 대기실로 안내한다. 대기실로 가는 와중에 마주치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방들은 상당히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우며 세월의 흔적이 기분 좋게 곳곳에 묻어있다. 단순히 낡고 오래됨의 문제가 아닌 멋들어진 흔적이다. 


현대적 호텔의 세련미를 보여주진 않지만 확실히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중세 귀족의 방에 놀라운 기분이랄까. 실제로 샤토에즈는 중세시대의 성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이며, 스웨덴의 귀족이 40년간 거주했던 곳이라 한다.



이 호텔을 소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에즈 빌리지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실조차 굉장히 럭셔리한 이곳에서는 에즈 빌리지에 오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한 바로 그 도로와 산등성이를 내려다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한품에 안을 수 있다. 


바로 방으로 안내하지 않고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는, 이미 정한 방 종류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한 번 씩은' 우리 집의 가장 좋은 곳'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에즈 빌리지에서도 가장 높기로 유명한 에즈 성, 그리고 그 에즈 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샤토 에자.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에즈 마을과 지중해 풍경이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에즈 빌리지의 가장 높은 곳에서 황홀경에 빠져있을 때 즘 안내원이 객실이 준비되었다고 귀띔해준다. 안내원의 뒤를 따라가서 만난 객실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어느 영화에서나 본 '중세 귀족의 침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다.


사실 에즈 빌리지에 대한 여행기이기 때문에, 이 호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남아있지만 블로그에 올린 상세 숙소 리뷰로 갈음하고 본격적으로 에즈 빌리지를 돌아보겠다.


http://lainydays.tistory.com/822 (샤토 에자 호텔 상세 리뷰)




에즈 빌리지의 전체적인 모습이다. 높은 산 위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그 모양새는 마치 미로와 같아서 지도를 보며 걸어 다닐 생각은 애초에 포기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이제 에즈 빌리지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보도록 하자.



호텔 샤토 에자를 빠져나오면 육중하고 높다란 돌담이 나를 짓누른다. 위압감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일 듯. 만약 현대적인 디자인의 난간이나 간판이 없었다면, 이곳은 21세기 남프랑스가 아닌 영락없는 16세기 남프랑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에즈 빌리지는 그 규모가 크지 않아서 조금만 발품을 팔아도 마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근의 아름다운 마을 생폴 드 방스와 비슷하다. 좁다란 골목과 높다란 양쪽 벽,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오밀조밀한 요소들..


다만, 생폴이 여성스러움을 갖고 있다면 이 곳 에즈 빌리지는 남성성을 지닌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생폴보다 뭔가 좀 더 우악스러운 모습이다.




에즈 빌리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정원이 있는데 워낙 늦게 도착한 탓에 정원이 문을 닫아 구경할 수 없었지만 내가 머문 숙소에서 바라본 모습과 별 반 차이가 없다고 하기에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반대로 얘기하면, 샤토에 자에서 1박을 할 것이 아니라면 에즈 빌리지 맨 꼭대기에 있는 정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문하길 추천한다.



정원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금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향한다. 워낙 골목이 좁고 돌담은 높아서 시야가 콱 막히지만, 살짝 시선을 멀리 던져두면 연락 없는 요새의 느낌을 준다. 마치 맞은편에서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마차가 와서 멈출 것만 같다. 


에즈 빌리지의 곳곳엔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있는데 옛 마구간과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고 한다. 워낙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한참을 가게 앞에 서성이게 된다. 



에즈 빌리지는 아담한 마을 규모 덕분에 서너 시간 정도 머무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1시간만 돌아다녀도 다 볼 수 있을 것이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니스-모나코-생폴-에즈 빌리지를 묶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신나게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성당을 볼 수 있는데 이 성당은 날이 저문 뒤 모습으로 다시 안내하겠다.



생폴 드 방스 마을만큼 아기자기한 맛은 없지만 큼직큼직하고 둔턱 하게 멋져 보이는 에즈 빌리지. 멈춰버린 시간의 흐름을 닮아 평소 빠르기만 하던 나의 발걸음도 점점 느려져만 간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드문드문 식당도 보인다. 하지만 매우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밥을 먹는 것이 좋다. 사실 에즈 빌리지를 오게 되면, 마을 안에 있는 식당이 문을 닫아버리면 마을 초입까지 내려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워낙 골목이 좁기 때문에 밥을 먹기 편한 넓은 공간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이런저런 불편함도 추억이란 이름 아래 보정이 되기 마련..


늦은 오후 무렵 정신없이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쏟아지는 노을에 넋을 잃게 된다. 해는 산등성이를 너머 저기 지평선 너머 바다까지 물들이는 중.. 이런 풍경을 보면서 발길이 쉬이 떨어질 리가 없다..



다시 마을 입구로 내려왔고, 맨 처음 짐을 맡겼던 호텔의 리셉션 오피스도 보이고, 오른쪽에는 기념품 가게도 있다. 에즈 빌리지 초입에 있는 기념품 가게는 한 번쯤 들어가볼 만하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아 기념품을 구입하기 딱 좋다.



새삼 높은 곳에 위치한 에즈 빌리지..



에즈 빌리지 초입에는 마트도 있는데, 다시 에즈 빌리지로 돌아가면 그 안에  마트는커녕 작은 슈퍼도 없기에 여기서 다 필요한 음식이나 먹거리 등을 조달해야 한다.



마트 건너편에는 작은 음식점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gascogne cafe요, 나름 이 지역의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행객보단 현지인이 주로 많이 찾는 곳으로 이 곳에 대한 얘기도 블로그에 올린 상세 글로 갈음해본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에즈 빌리지 여행기이므로..


http://lainydays.tistory.com/826(에즈 빌리지 맛집 gascogne cafe)



식사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졌다. 어둠이 드리운 에즈 빌리지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곳을 서너 시간만 혹은 반나절만 보고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보고 지나칠 풍경들을 소개해본다.


밥을 먹고 한껏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가파른 오르막을 가는 건 절대 유쾌한 경험 일리 없다. 하지만 저 높은 곳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에즈 빌리지를 보노라면 절로 발걸음이 앞을 향한다. 



나의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 한낮의 뻔한 풍경보다는 가려질 건 가려지고 도드라질 건 도드라지는 밤의 풍경을 더 예쁘다고 말하는데, 에즈 빌리지만큼은 밤보다는 낮이 더 예쁜 모습이다. 그 이유는 밤이 되면 온통 주황빛으로 변하는데, 에즈 빌리지 특유의 색을 잃기 때문이다. 


낮동안의 따스하고 울그락불그락한 돌담길이 특색 없는 주황빛으로 변하는 게 영 안타깝다. 하지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조금 더 다양한 색과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이며 한낮에 비해 조금 더 중세마을을 돌아보는 느낌이 짙에 드는 건 장점이다. 


에즈 빌리지는 그 안에 샤토에 자 호텔을 제외하면 별 다른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밤이 되면 고요와 적막을 넘어선 그 무언가의 분위기로 휩싸인다. 사람에 따라선 이러한 분위기가 자칫 좋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적막한 분위기도 즐기는 나에겐 정말 사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을을 내려오면서 마주쳤던 성당에 다시 가서 내부를 돌아본다. 밖은 어둠이 드리웠으나 성당 안은 이상하리만치 밝다.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잠시 기도를 드리고 천천히 성당을 둘러본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성당은 이시각에 올만한 가치가 있다. 정말로 딱, 에즈 빌리지에 들어맞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소박하면서도 화려하다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표현이 이 성당엔 어울린다. 


성당 앞뜰에서 내려다본 근처 마을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노을이 지면 노을 지는대로, 어둠이 내려앉으면 또 그런대로 고즈넉하고 넉넉한 풍경을 보여주는 에즈 빌리지



성당을 끝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숙소로 옮긴다. 마을 입구의 야경이 평범한 주황색 조명으로 돌담의 아름다움을 무장 해제시켰다면, 이곳의 야경은 다채로운 빛과 돌담 특유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는 은은한 조명이 공간을 아늑하게 감싸 안고 있다. 밤보다 낮이 더 아름답다는 말은 이곳에선 해당되지 않는다. 



벽 숙소로 돌아와 이미 저물어 어둠 속으로 깊이 가라앉은 에즈 마을과 지중해 바다를 바라본다. (좌상단 사진) 산등성이 너머 밝게 빛나는 건 바로 니스 공항. 창 밖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새벽녘 다시 일어나 사진에 담아본다. 마치 저녁노을 느낌이 났던 풍경 (우상단 사진) 그리고 마침내 날이 밝아오자 맑고 파란 지중해 바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실제로 마주하면 황홀한 모습에 넋을 잃고 계속 바라보게 된다. 



숙소에서 짐을 대충 정리하고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을 찾았다. 왜? 바로 멋들어진 풍경을 보며 먹을 수 있기 때문! 이 호텔의 조식은 뷔페식이 아니라 이렇게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어준다. 무언가 지중해의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식탁



식사를 마치고 호텔을 빠져나오며 이제 중세와는 안녕을 고할 시간임을 직감했다. 아침을 맞이한 에즈 빌리지의 모습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지중해 바다를 닮아있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나는 다시 정신없이 바르게 변하는 현대문명으로 귀환할 것이기에.. 발걸음을 더욱 늦춘 채 시간이 멈춰버린 이곳의 분위기를 정신없이 탐닉했다. 
                    

지난밤 스산함은  온데간데없고 따스한 온기와 활기가 에즈 빌리지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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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ainydays.tistory.com/811 (같은 듯 다른 듯 생폴 드 방스)

http://lainydays.tistory.com/784 (에즈와 함께 가면 좋은 곳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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