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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Jan 27. 2016

뺏고 빼앗긴 흔적의 나열..

포르투갈 리스본 근교 여행 - 신트라 무어인의 성

'근교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함을 좋아한다. 주(主) 도시로 여행을 갈 땐 무언가 '이것은 꼭 봐야 해' '여기는 꼭 가야 해' '여기선 꼭 이걸 해야지'와 같은 생각이 자칫 무거운 족쇄가 되어 돌아오곤 하는데, 주 도시와 가까운 근교 도시로의 여행이라 치면, 가도 그만이요 안 가도 그만이며, 꼭 해야 하고 봐야 하고 먹어야 하는 그 무언가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도 없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 나는 대로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주 도시와는 또 다른, 마치 별책부록과도 같은 그 느낌이 좋다. (하지만 요새는 별책부록을 얻기 위해 잡지를 구매하는 사람도 많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엄청나게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 찬 도시다. 때문에 이 곳만 온전히 둘러보는데 수 일은 족히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보면 리스본 주변에 있는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작은 마을들을 볼 수 있는데 마치 리스본 주변에서 희미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며 리스본을 더욱 예쁘게 치장해주는 것 같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도시를 꼽으라 하면 바로 신트라를 말할 수 있는데, 무어인의 성, 신트라 궁전, 페냐 성, 헤겔 레이라 궁전 등 리스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여행지를 겨우 한 시간 거리의 이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우선, 신트라로 향해보자.



근교 여행을 떠나는 날은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난다. 습관이다. 늦은 시각에 근교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우선, 가서 아니다 싶으면 빨리 주 도시로 되돌아올 수 있고, 가서 좋다 싶으면 하루 종일 머무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먼  여행지일수록 일분일초가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 수록 여행에서 돌아다니는 것 만큼이나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기도 하다.


이른 아침 리스본 숙소에서 나와 아름다운 호시오 역으로 향한다. 밤에 그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이 곳은 아침이 되면 굉장히 수수 해지는 여성의 얼굴을 닮았다. 포르투의 상 벤투 역은.. 그에 반하면 하루 종일 24시간 화장을 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건물의 내부는 삼삼하다 싶을 정도로 심심하다. 매표소에서 신트라행 티켓을 구입하고 플랫폼으로 진입하자.



호시우 역의 겉모습만으로는 내부에 이토록 거대한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역시 사람이고 건물이고 안과 밖이 다르며 직접 겪어봐야 아는 건가보다. 열차 플랫폼에 가면 항상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이번엔 어디로 떠나게 될까, 얼마나 멋진 여행지로 가게 될까, 저 열차는 어디로 향하는 열차일까.. 이런 비슷한 감정은 공항 출국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리스본을 3일 이상 여행하는 사람은 대부분 근교에 있는 3개 도시를 염두에 둔다. 신트라와 카보다 로카, 그리고 카스카이스가 바로 그 도시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신트라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곳들이 많다. 신트라 왕궁, 무어인의 성터, 페나성, 헤겔 레이라 별장이 바로 그것이고 카보다 로카는 대륙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으로 유명하고, 카스카이스는 럭셔리한 휴양지로 이름이 높다. 나는  이 중에서 신트라와 카보다 로카를 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이 세 가지 도시를 많이들 가는 이유는 교통편이 편해서다. 보다시피  한 바퀴 휭~도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다. 리스본 > 국철(40분) > 신트라 > 403 버스(30분) > 카보다 로카 > 403 버스(30분) 카스카이스 > 국철(30분) > 리스본. 나 역시 위 루트를 따라 일단 호시우 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로 향한다.



대략 40분 정도면 신트라 역에 도착한다. 이 정도면 근교 치고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이며 왕복으로 계산한다 해도 1시간 20분 정도면 되니 정말 최적의 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가볍게 여행하기엔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볼 수 있다. (서울로 출퇴근할 때 편도도 안 되는 거리잖아?!)


열차에서 내려 건물 밖으로 나오면 상당히 산뜻한 아줄레주가 여행객을 맞이한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내내 마주쳤는데 나라의 아이덴티티로 삼기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


신트라 역 바로 옆에는 왕궁 등으로 향하는 순환버스가 대기 중이다. 신트라 역에서 구시가지와 신트라 왕궁과 무어인의 성 등으로 가기 위해서는 434 버스를 타면 된다. 운 좋게 버스가 오자마자 탑승했고, 자리가 있어서 편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버스는 금세 만원이 되고 말았다. (인생은 타이밍)



버스는 신트라 역을 떠난 지 십 수분 만에 신트라 구시가지에 도달한다. 이 곳에는 신트라 왕궁도 있고  골목골목이 예쁜 구시가지도 있다. 하지만 신트라 왕궁은 나에게 와 닿는 여행지가 아니었기에 왕궁을 보기 위해 내리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계속 버스 안 자리를 지켰다.


무어인의 성으로 향하는 길은 굉장히 험하고 경사지고 구불구불하다. 좌하단 사진에서 보듯 버스가 상당히 기울어져 운행한다. 기사님이 타쿠미를 존경하는 것인지 코너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버스 안의 많은 사람들 목숨을 담보로 곡예운전을 하시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버스로 두부 배달?ㄷㄷ)


무어인의 성 정류장은 자칫 놓치기 쉬운 곳에 있다. 커다란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가에 수줍게 (무어인의 성 정류장이) 아닌 듯 서 있다. 하지만 걱정 말자. 우리에겐 여행지 불변의 꿀팁 중 하나가 있으니! (모르면, 남들 많이 내리는 곳에서 내릴 것!)



무어인의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상단 사진). 겉보기엔 뭔가 굉장히 허름해 보이며 쇠락한 성의 터? 만남은 것  아닌가?라는 불안한 기운이 돈다. 하지만 의심을 접고 일단 들어가자. 매표소는 입구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 어디서 사든  상관없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무언가 초록 초록한 것이 예전 모닝*로리에서 나온 눈이 편해지는 공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숲이 우거져서 발을 내딛자마자 폐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에 내 몸이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어인의 성터는 7~8세기 무어인이 지은 성벽을 말한다. (무지하게 높은 곳에 지어놨다) 1147년에 성이 함락된 뒤로는 그냥 성벽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관광지로 개발이 되었다. 산세가 굉장히 험하다. 관광을 위해 닦아놓은 길만 아니라면 꽤나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초입에서는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바깥 풍경이 보인다. 갑자기 탁 트인 시야는 걸어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잠시 붙잡아둔다. 시선 아래로 보이는 신트라 시가지 모습에 새삼 높은 곳에 올라왔음을 깨닫는다.


전쟁 중 먹을 것을 숨겨놓았다는 장소


산책길의 중간에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무어인의 성에 대해 안내해주는 공간이 나타난다. 무어인의 성의 지형도를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는데 계속 보다 보면 여기가 왜 그리 천혜의 요새인지, 왜 여기에 이런 요새를 지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 지형도는 눈에 잘 담아두자. 나중에 페냐 성에 갔을 때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산책길의 끝에 무어인의 성 입구가 있다. 이곳에서도 입장표를 구매할 수 있다. 사실 성에 대한 별 다른 정보 없이 왔던 나는 정류소에서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숲 속 산책로에  힐링하면서도 '이게 뭐지? 성은 어디?' 라며 의구심을 품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진짜 무어인의 성 입구를 지나자마자 의구심은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고 그 빈 공간을 경탄과 탄성과 감탄이 가득 채워버렸다. 천 년 전에 지어진 돌로 된 두텁고 높은 성벽과 거대한 암석들. 정말 그야말로 중세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다. 영화에서만 보았던 성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 벽 위는 평평하게 되어 있어서 걸어 다닐 수 있다. 먼 훗날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곳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넉넉지 못한 산 윗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며 불평과 불만을 누르고 올라간다.



성벽을 오르면, 무어인의 성 터를 처음 봤을 때 내지른 감탄사보다 정확히 12배 더 큰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보기 때문. 탁 트인 시야에는 신트라의 구시가지와 신트라 궁전, 그리고 드넓은 대지와 저 멀리 대서양까지 한 눈에 담긴다. 그리고 그 위를 시원하고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준다.


지금이야 나는 이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지만, 그 옛날 이 곳을 짓고 만든 사람들에겐 이런 작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사방이 훤히 보이는 것이 과연 천혜의 요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무어인의 성은 생각했던 것 보다 성벽의 길이와 규모가 거대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시선을 좌우로 돌려 봐도 끝없이 이어지는 기세가 정말 대단했다. 두터운 성벽의 위세도 위풍당당하지만, 나름 잘 다듬은 성벽 아래로 엿보이는 거대한 기암괴석들의 위용은 감춘다고 감춰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무어인 성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이다. 성의 가장 끝에서 반대편까지 담아보았는데 실로 엄청난 규모다. 7~8세기 지어진 것까지 감안하면..(엄청난 막일!!) 참고로 초소 같은 곳 상단에 꽂힌 깃발은 무어인의 성을 정복한 나라들의 것이라고 한다. 깃발 개수를 보면 알겠지만 이 성의 주인은 꽤나 자주 바뀌었다. 그만큼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반증일 터..



무어인의 성은 외곽의  성벽뿐 아니라 성벽 안 쪽 구조물들도 굉장히 튼실하게 지어져 있다. 지금 시대 기준으로 보기에 세련되지 않아 보일 뿐 건축 연도 시대 보정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건축술과 디자인이 녹아들어간 건물 일터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굉장히 탄탄해 보이고.. 중간중간 자연 암석이 어우러진 디자인은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시대를 앞서 나갔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앞을 가로막는다고 무작정 깎아 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고 수용하여 건물을 지은 그 마음씨는 우리들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무어인의 성벽 한쪽 끝에는 포르투갈 깃발이 달려있다. 글을 놓치지 않고 따라오신 분이라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수 있을터!!



무어인의 성벽은 성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숲길도 정말 예쁘고, 그 옛날 이렇게나 높은 곳에 지어진 원초적인 힘이 느껴지는 두터운 성벽도 매력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곳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신트라 지역과 대서양 하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올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성벽 어디를 가더라도 내 시선은 계속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깃발이 꽂힌 성벽에서 반대편으로 향해본다. 조금 무식하게 지어지긴 했지만 성 안쪽이 정말 튼튼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저 정도 두께의 벽과 돌덩이면 앞으로도 천 년은 갈 것 같다) 흡사 콜로세움을 봤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하다. 성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꽤나 높다는 사실에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앞서 말했듯 무어인의 성은 보기보다 커서 그리고 높고.. 계단도 많고 좁고 불편하고 이동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천천히 둘러보는데 대략 1~2시간 정도 필요하다. 멋들어진 풍경을 즐길 줄 안다면 30분 정도는 더 추가해두자. 이동이 불편한 대신, 사람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저기 걸터앉아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선을 저 멀리 던져두고 신선처럼 시간을 죽이며 여유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포르투갈 깃발이 꽂힌 곳에서 반대편 끝으로 보면 굉장히 반가운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멀리 보이는 저 알록달록한 빨갛고 노란 괴상한 건물이 바로 페냐 성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페냐 성에 가면 무어인의 성이 내려다보인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성. 형제 같다. (원수라는 뜻인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산세가 굉장히 험준하다. 완만하고 넓게 보이되 그 사이를 각종 기암괴석과 나무들이 빼곡히 메우고 있어서 쉽사리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대지의 모습 그대로다.



무어인의 성에서 가장 높은 초소에 올라 각자의 방식으로 (떡이 된 채) 잠시 쉬고 있는 사람들. 자연스레.. 정말 자연스레 아무 곳에나 걸터앉게 되고, 하염없이 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아무 볼 것 없는 들판이 아니라 오밀조밀 밀한 것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무어인의 성 가장 높은 곳에서 무어인의 성 전체를 조망한 모습. 반대편, 포르투갈 깃발이 꽂힌 초소가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크다. 다시 생각해도 이런 높고 험준한 곳에 이런 거대한 요새를 지었다니.. 인간이란 정말 위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 전망대로 쓰이지..)



계단을 내려오는데 뭔가 행복한 분위기의 모자를 만났다. 사진으로도 보이지만.. 길은 좁고 경사는 가파르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정말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과도 같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한 번에 오르려 말고 조금씩 쉬어가며 신트라의 경치를 즐기자.



무어인의 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라 생각한다. 대서양과 신트라 시내가 저 멀리 내려다보이며, 두텁고 튼튼해 보이는 성벽과 바로 옆에는 육중한 돌덩어리가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을 기세이며(하지만 저 많은 깃발은 무엇?) 관람하기 불편한 계단이지만..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무어인의 성만의 독특한 매력 요소가 되고 있다.



덕분에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찾은 이들도 많은 이 곳. 새삼.. 성벽이 높다.



굳이 힘들게 성벽 위를 기어올라가야 볼 수 있는 전망이 아니더라도 성 내부의 조경도 꽤나 잘 되어 있어서 쉬엄쉬엄 보러 오기도 좋다. 물론 천만 불짜리 전경은 덤..



무어인의 성을 다 보고.. 페나성으로 가기 위해 다시 아까 그 정류장에서 403번을 기다리고 있다. 곧 페냐 성 여행기도 올리겠지만.. 페나성은 무어인의 성보다 정확히 123.4배 더 재미있었다. 기대하시라 : )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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