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건축기행
만약 유명한 도시마다 어울리는 인격을 부여한다면 어떨까? 프랑스의 파리는 낭만을 즐기는 음유시인일 것이고, 벨기에의 브뤼셀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 오스트리아의 빈은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는 우아한 사람, 미국의 워싱턴은 참견하기 좋아하는 꼰대 쟁이, 이탈리아 로마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 정도가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느낌을 적은 것일 뿐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를 것)
그렇다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상남자의 도시라 일컫겠다.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잘 띄어 도시의 외향을 결정짓고, 둘째 이유로는 도시와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 도시의 내적 성향을 결정짓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웅장하고 거대하고 힘이 넘친다. 앞으로 보게 될 왕궁도, 어부의 요새도, 세체니 다리와 이스트반 대성당도 그러하다. 도나우 강변을 따라 지어진 이들 건축물을 돌아보며 그 남성다움을 몸소 느껴보자.
부다페스트 왕궁 - 부다페스트의 힘을 느끼다
첫 번째 방문지는 바로 왕궁의 언덕에 있는 부다페스트 왕궁이다. 부다 언덕 남쪽 꼭대기에 위치한 이 건물은 부다페스트 여행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있는 만큼 걸어 올라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아름다운 도나우 강변을 즐기며 산책하듯 올라가는 것도 추천한다.
마치 요새와도 같이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이 왕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Széll Kálmán tér 지하철 역에서 16번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로 향하는 버스 치고는 굉장히 작고 아담하다. 비좁은 버스에 몸을 구겨 넣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다.
왕궁에 도착하면 우선 간단히 지도라도 살펴보자. 왕궁이 생각보다 넓고 거대하다. 대략적인 위치만 감을 잡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 편하다.
왕국의 첫인상은 거대함, 웅장함, 힘으로 압축된다. 여타 유럽의 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이며 부다페스트가 지닌 남성성의 원천지라 할 수 있다.
이곳은 13세기 헝가리의 위대한 군주 벨라 4세가 몽골의 내습으로부터 피신하고자 만든 것으로, 도나우 강변 언덕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언덕 위에 요새와 같은 성을 만들었다.
그 뒤로 주인이 몇 번 바뀌다가 17세기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왕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이용 중이다.
건축 양식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부다페스트는 천국과도 다름없다. 부다페스트의 대부분의 양식이 긴 세월 동안 무너지고 재건하고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을 수용했다. 부다페스트 왕궁은 그 전체가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왕궁이 갖고 있는 역사와 예술적인 측면 덕분이었다.
왕국을 처음 건설한 벨라 4세는 고딕 양식을 선택했지만 15세기 헝가리의 황금시기를 이끈 마차시 1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왕궁을 리모델링한다. 그 뒤 십자군 전쟁으로 크게 파괴되었다가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다시 한 번 무너진 뒤 18세기 바로크 양식대로 다시 복원을 하고 있다.
장장 수백 년에 걸친 유구한 역사 속에 무너지고 재건되길 반복하며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왕궁은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처음 왕궁에 발을 디디면 거대한 건축물에 시선을 사로잡히지만 건물이 외형이 차츰 익숙해지면 건물을 구성하거나 장식하고 있는 요소에 눈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 디테일이 정말 경이롭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조각상은 전설의 새 '투룰'로,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트를 낳았다고 한다. 날개는 독수리 머리는 용의 모습을 띠고 있고 쥐고 있는 칼은 용맹성을 상징한다고. 투룰 조각상 옆에 있는 거대 분수는 헝가리 황금시대의 주역 마차시 대왕이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위 사진은 부다페스트의 메인 왕궁이다. 부다페스트 관광의 핵심인 부다페스트 왕궁 중에서도 또 핵심이 되는 건물로, 현재는 국립미술관으로 쓰인다. 건물 바로 앞에는 왕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동 기마상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오이겐 왕자로, 먼 옛날 오스만튀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헝가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부다페스트 왕궁을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다운 도나우 강을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메인 왕궁 바로 앞 난간 쪽으로 가면 도시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도나우강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세체니 다리, 그리고 웅장한 시청사와 성 이스트반 대성당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은 한낮에 와도 멋지지만 밤에 오면 더욱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준다. 이제 어부의 요새로 향하자.
어부의 요새와 마차 슈 교회 - 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화
왕궁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어부의 요새는 1895년부터 1902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중세기 이 일대를 어부들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했다 하여 어부의 요새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어부의 요새 역시 왕궁이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왕궁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도나우 강변을 조망할 수 있다. 게다가 요새 안에는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식사를 하며 도나우 강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현지인과 여행객에 굉장히 인기가 많다.
왕궁과 많은 유사점을 지닌다. 우선 외형을 보면 왕궁과 마찬가지로 웅장하고 거대하며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신 고딕 양식과 신 로마네스트 양식 등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혼재된 것 역시 동일하다.
그런가 하면 몇 가지 차이점도 있는데 이곳은 왕궁보다 작은 규모 덕분에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오는 응집력과 힘이 대단하다. 또한 왕궁의 경우 직진성이 강한 선이 강직함을 나타낸다면, 어부의 요새의 경우 곡선이 많이 쓰여서 왕궁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다. 이런 점 덕분에 어부의 요새는 왕궁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리고 겉보기와는 달리 어부의 요새는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볼거리가 많다.
어부의 요새는 성벽 위는 많은 사람이 거닐 수 있을 정도의 폭을 지녔다. 단, 이곳은 유료 구간이라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올라갈 수 있는데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라 웬만하면 올라오길 추천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바라보는 도나우 강변 또한 굉장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왕궁과는 달리 성 이스트반 대성당이 안 보이고 시청사가 더욱 멋지게 보인다.
어부의 요새는 부다페스트 또 하나의 명물을 품고 있는데 바로 마차 츄 성당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성당의 남쪽 탑에 마차 슈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여 마차 슈 성당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1015년에 건축되었지만 1470년 마차 슈 1세에 의해 재건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포함 대부분의 헝가리 국왕의 대관식이 치러진 곳으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첨탑의 모양새가 전형적인 고딕 양식 성당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지붕에 있는 다이아몬드 장식이 마치 자그레브에 있는 성 마르코 성당과 유사하다.
성당 바로 정면에는 광장이 하나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스테판 1세의 동상이 서있다. 스테판 1세는 1000년부터 1038년까지 최초의 왕으로 헝가리를 지배했으며 사후 1083년 교황 그레고리 7세의 승인으로 성자로 추대되었다. 사진이 생각보다 거대해서 성당 전체를 담으려면 광장의 맨 끝으로 가야만 한다. 이제 왕궁의 언덕을 내려와 도나우 강변으로 향하자.
국회의사당 건물 - 런던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웅장함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건물은 도나우 강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강변 어디에 서있든 굉장히 잘 보인다.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여 1884년 착공하여 1902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길이만 자그마치 268m에 이르며 너비는 118m 건물 가운데에 있는 첨탑의 높이는 자그마치 96m에 달한다. 1896년 이 곳에서 열린 첫 의회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런던에 가면 템즈강변에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는데 네모 반듯한 모양새는 둘이 유사하지만 오밀조밀한 런던 국회의사당 건물에 비해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건물은 선이 굉장히 굵직굵직해서 런던의 그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거대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건물의 길이와 첨탑의 높이는 런던의 국회의사당이 더 길고 높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이 그러하듯 이 곳 역시 멀리서 보았을 땐 그 웅장함을 쉽사리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막상 건물 가까이에 가보면 고개를 절로 뒤로 젖히게 된다. 아마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모든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다페스트 야경의 한 축을 담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체니 다리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서쪽인 부터 지구와 동쪽인 페스트 지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쪽 지구 사이에 놓인 최초의 다리이며 10년 간의 공사 끝에 1849년에 개통되었다. 세체니는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이자 다리 건설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한 명인 세체니 이슈트반의 이름을 따온 것
다리 양편 입구에 2마리의 혀가 없는 사자 조각상이 있어서 사자 다리라고 불리기도 하며 밤이 되면 전구가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사슬 다리로도 불린다.
유럽여행을 다니며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다리는 거의 다 보았지만 세체니 다리는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른 다리들의 경우 여성스럽거나 화려하거나 수더분한 매력이 있었던 반면 세체니 다리는 보자마자 굉장히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다른 유럽의 유명한 다리(bridge)들이 다소곳하게 혹은 발랄하게 혹은 우아하게 서있었다면 세체니 다리는 굉장히 우직하고 강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랄까..
성 이슈트반 성당 - 신고전주의
이번에는 도나우 강변을 벗어나 시내로 가보자. 부다페스트 최고의 번화가 중 한 곳인 리스트 광장을 조금 지나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헝가리의 초대 국왕이자 로마 가톨릭의 성인인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1851 착공하여 1906년 완공한 건물이다.
이 성당은 건축 양식으로 따지면 전형적인 네오 르네상스 건물이다.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모양을 띠고 있으며 그 중심에 돔이 있다. 사진 속 사람과 건물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건물이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슈트반 대성당은 엄청난 크기로도 유명하지만 내부의 화려함으로도 유명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헝가리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나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중앙의 돔이 유명한데 글라스로, 카로이 로츠의 작품이라 한다.
작고 귀여운 지하철역
지금까지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들만 봤지만 부다페스트에는 의외로 작고 귀여운 시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하철역이다. 부다페스트는 런던, 이스탄불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지하철을 도입했다. 현재는 4호선까지 운영 중인데 2002년 지하철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아무래도 워낙 오래전에 개통된 노선이라 역을 확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플랫폼 길이도 짧고 높이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다. 땅 위에서 거대한 건축물만 보다가 땅 아래에서 느닷없이 귀여운 규모의 역을 보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 건물
오래된 장엄한 건축물만 얘기하다가 갑자기 웬 맥도널드 건물 얘기일까? 부다페스트 뉴가티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무언가 굉장히 고풍스러운 건물 한 채가 우두커니 서있다.
아름다운 레스토랑 건물일 거라 확신하고 내부를 들어가면 굉장히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것은 빅맥 세트일 테니.
건물의 내부 역시 어느 호텔 카페나 오페라 음악당 같은 분위기지만 사실 이곳은 맥도널드 건물이다. 여느 매체에서 선정한 적은 없지만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혹은 우아한 맥도널드 매장으로 불린다.
왕궁부터 계속 이어진 웅장하고 거친 상남자 건물에 지쳤다면 잠시 이곳에 들러 헝가리의 우아함을 햄버거와 함께 즐기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부다페스트, 백만 불짜리 야경을 갖다
유럽에는 백만 불짜리 야경을 갖고 있는 도시가 많다. 대표적인 도시로는 파리가 그러하고 프라하가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난 여기에 과감하게 부다페스트 야경을 넣어보겠다. 앞선 두 도시의 야경이 예쁜 아가씨라면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멋진 군인의 느낌이 난다. 위에서부터 계속 언급했던 웅장함과 거대함은 밤에도 그 빛을 발한다.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야경 포인트 중 한 곳인 시타 델라로 향한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지만 이곳에선 도나우강과 국회의사당, 왕궁, 세체니 다리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왼쪽부터 마차 슈 교회 > 왕궁 > 어부의 요새 > 사슬 다리 > 국회의사당, 그리고 성당까지.. 부다페스트의 관광 명소들이 한 눈에 보인다. 세체니 다리에 붙은 수백 개의 전구들은 밝게 빛나며 마치 사슬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멀리 보이는 왕궁은 그 두터운 요새의 모습을 밤에도 웅장하게 내놓고 자랑하고 있다. 이렇듯 부다페스트의 화려하고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한편으론 으슥한 분위기 덕분에 로맨스를 꿈꾸며 찾아오는 남녀도 종종 볼 수 있다.
시타델레를 내려와 강변으로 내려온다. 부다페스트에는 익히 알려진 곳 외에도 높이와 시야가 좋은 야경 포인트가 몇 군데 더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장소는 바로 강변이 아닐까
도나우 강변은 강변 인도 길이 산책하기 꽤나 쾌적하도록 되어있다. 인도 바로 옆으로는 트램이 다녀서 본인의 체력을 생각해서 적당히 걷고 힘들면 트램을 타고 숙소 등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밤늦도록 인적이 드물지 않고, 강변을 따라 걸으며 시타델레에서 본 멋진 야경을 바로 눈앞에서 즐길 수 있다.
아.. 부다페스트도 city of love였든가..로맨틱한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는 연인 간의 사랑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든다.
낮의 웅장하고 거대함 속에 부드러움과 귀여움이 있으며 밤의 화려함 속에는 사랑이 있는 도시,
바로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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