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제 속도로 달린다 - 문제는, 내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날은, 세상이 너무 멀쩡해서 야속했다.
나는 이렇게 삐걱거리는 것 같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갔다.
텅 빈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또다시, 멈춰 선 사람은 오롯이 나뿐인 듯했다.
시계 초침 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나만 다른 시간 속에 갇힌 걸까.
며칠째 감기가 낫지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은 쌓여 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잠들지 못한 새벽,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 화면을 켜니
타임라인엔 ‘#굿모닝’ ‘#행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여행 사진과
새벽 러닝 인증샷이 줄줄이 올라왔다.
파란 불빛 속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찬바람처럼 스며들어,
내 온몸의 열기와 대비되어 더욱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때서야 새삼 깨달았다.
세상은 여전히 평온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곧 나아질 거야”라고 쉽게 말했다.
그들의 평온함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아주 친한 언니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다.
무언가를 바란 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속내를 어디엔가 잠시 내려놓고 싶었을 뿐,
누군가 조용히 그 시간을 견디는 내 곁을 지켜주기만 해도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현관 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따뜻한 죽과 함께, 짧은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조금 뒤, 언니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없이 내 옆에 앉아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괜찮냐고 묻지도, 조언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있어주었다.
차의 온기가 손바닥을 데울수록
몸속 깊은 곳에서 묶여 있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창 밖 도시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방 안에는 시간이 잠시 머문 듯한 고요와 따뜻함이 머물러 있었다.
그 고요가, 그 온기가
내가 한참 찾고 있던 위로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곁에는 잠시 멈춰 선 따뜻한 마음이 머물러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세상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아프든, 슬프든, 기쁘든.
변함없이 자기 할 일을 해나갔다.
그 속에서 나만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왜 나만 이럴까, 하고 스스로를 탓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은 그저, 자기 속도로 흘러가는 것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 안에서 나도,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는 걸.
남들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가끔은 멈춰 서서 숨을 고르더라도, 괜찮다.
아플 때는 아픈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기운이 돌아오면, 다시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나는 이제, 억지로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만의 리듬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리듬 위에
작은 기쁨과 고요한 평안을,
조용히 쌓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