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히 꺼내 놓는 나의 문장들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다.
말에는 표정과 눈빛이 따라오지만, 글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다.
그래서 내 감정은 언제나 말보다 늦게, 조용히 문장으로 도착했다.
드러내는 게 두려운 나는, 글 안에서야 비로소 조금씩 나를 꺼내놓을 수 있었다.
겉으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웃어넘기지만 속에서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이 감정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그래서 글이 내게는 안식이자 피난처였다.
사람들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생각들, 드러내기 어려웠던 마음들을 조용히 적어두는 곳.
마치 바다가 품은 깊은 심연처럼, 글은 내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담아주었다.
텅 빈 노트북 앞에 앉아 흰 화면과 마주하는 시간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는 나와 깊이 대화했고, 그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글을 세상에 보여야 할까, 하는 질문이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글이 되었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하니
일기장을 몰래 펼쳐 남에게 건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글을 올리던 날을 기억한다. '공개'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모니터 앞에 앉은 손은 차가워졌고, '괜찮을까?'라는 물음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문장은 다 써졌는데,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채였다.
"이 글이 너무 속내를 드러내면 어쩌지." "누군가 이 문장을 보고 나를 함부로 판단하면?"
결국 떨리는 손으로 '공개'를 눌렀다.
그리고 그날 밤, 아무도 읽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으로 이불속에 몸을 웅크렸다.
그 뒤로도 나는 망설임과 반복되는 자기 검열 속에서 글을 썼다.
어떤 글은 세 번째 문장에서 멈췄다.
다섯 번쯤 표현을 바꾸다 결국 저장만 해두고 닫았다.
내 진심이 맞는지, 아니면 그냥 과장된 감정은 아닌지
— 나조차 내 문장을 끝내 믿지 못한 날이었다.
어떤 날에는 공들여 쓴 글이 별 반응 없이 지나갔다.
괜히 쓸쓸해져서 하루 종일 글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마치 어둠 속에 던진 돌멩이처럼, 그 울림이 어디에도 닿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음을 다해 썼던 어느 에세이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좋았다'는 한 문장을 받았다.
화려한 문장도 아니었는데, 그 한 줄이 내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조용히 닿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날 나는 글을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글을 계속 쓰면서 내게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영화주인공의 삶을 통해 드러냈던 날,
처음으로 그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말로는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가 글자로 옮겨지자, 마음 한구석이 환하게 열리는 듯했다.
친구와 나눈 깊은 대화를, 여행에서 만난 낯선 풍경을, 가끔은 꿈속에서만 보았던 희미한 감정들을 글로 담아내는 연습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 다움을 되찾아갔다.
삶의 색깔들이 내 안에 더 또렷이 머물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은 건, 글을 쓰는 일이 결국 나를 더 많이 만나게 해 준다는 것.
말로는 끝내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글에서는 조금 더 솔직해 졌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기보다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해 썼던 문장들이 가장 진실했다는 것도.
나는 여전히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혹시 감정이 너무 무겁진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아무 의미도 없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에 압도당하지는 않는다.
나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드러냄이 두려운 사람도 쓸 수 있다는 것, 두려운 감정을 껴안고도 나를 꺼내 보일 수 있다는 것.
내 글이 아주 작고 조용한 목소리일지라도, 그 안에 내가 담겨 있다면, 이미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마치 별빛이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빛나듯, 때로는 작은 목소리가 더 깊이 울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다시 한 줄을 쓴다.
"괜찮아. 이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솔직하게 살아내기 위한 문장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이 조용한 문장이 누군가에게 아주 작게라도 닿는다면
— 그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나는 믿기로 했다.
당신도 혹시 비슷한 두려움을 안고 계신가요?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 놓는 일이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면,
오늘은 작은 종이 위에 한 줄만 써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나만의 진실을 조용히 적어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작고도 용기 있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