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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웅 Feb 21. 2023

국도와 고속도로

도로에도 느림의 미학이 있다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면 놓치는 것이 있다. 느린 속도에서 볼 때 비로소 진면목(眞面目)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 산수의 경치뿐 아니라, 오래된 기억도 빨리 지나가면 떠올릴 수 없다. 초고속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완전 개통 전까지 속초에 가기 위해 항상 지나가야 했던 길이 있었다. 44·46번 국도이다. 홍천-인제-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로서 험준한 산악을 넘어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길도 굽어지고 가는 데 시간도 제법 걸린다. 그래서 국도변에는 음식을 파는 식당, 찐빵과 찰옥수수를 파는 트럭, 작은 휴게소가 줄지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휴게소는 ‘팜파스 휴게소’다. 이 휴게소는 어릴 적 속초로 가족 여행을 떠날 때 항상 들렀던 곳이다. 건물 옆 넓은 마당에 시원한 골바람이 부는 곳에 2층 높이는 돼 보이는 그네가 있다. 비록 가는 길이 멀고 험하여도 한적한 휴게소에서 그네도 타며 쉬어가면 피로가 풀렸다. 갓길에서 찐빵과 찰옥수수를 파는 트럭이 있으면 잠시 멈춰 그것들을 각 한 봉지를 사서 차 안에서 가족들과 같이 나눠 먹기도 했다. 내 기억 속 2010년대 강원도 여행은 느림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의 교감이었다.


 그러나 2017년 고속도로가 양양까지 닿으면서 국도의 모습과 분위기는 바뀌었다. 여행객들은 빨리 동해안에 도착하고 싶기에 빠른 고속도로로 길을 돌렸고 느린 국도를 외면했다. 도롯가에 있던 식당과 휴게소도 쇠락(衰落)의 길로 접어들었다. 폐가가 된 식당도 부지기수고,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들렀던 ‘화양강 휴게소’는 문을 닫았으며, 영업을 이어나가는 팜파스 휴게소도 예전에 비해 썰렁했다.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2020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들린 옥수수 트럭 앞에서 옥수수 파는 아저씨가 한 말이 떠오른다.


 “고속도로 뚫리고 나서 이쪽은 다 망했어요.” 


 어릴 적 속초로 가는 길에 종종 들렀던 코다리 구이 식당 사장은 “근처 유동인구가 줄어 적자를 면치 못해 원주로 식당을 이전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식당 사장, 어쩌면 옥수수 장수도 떠났을 길옆 마을은 지금은 인적이 드물다.


 한편, 철도는 도로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다. 구불구불한 철길을 곧게 펴는 과정에서 많은 간이역이 폐쇄되고 읍내에 있던 기차역이 외곽으로 옮겨졌다. 논밭과 산골짜기를 둘러가던 철로를 쭉 뻗은 고가와 터널로 올려놓았다. 빨라지긴 했어도 창밖 경치를 구경하는 승객들의 여유를 빼앗아 갔다. 국도와 달리 철도는 이설 되면 역사(驛舍)가 헐리고 철길이 걷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다시 가볼 수 있다는 것은 철도보다는 도로가 더 희망적이다. 그러나 이는 국도의 상황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은 발전하고 교통은 더욱 편리해지며 사람들은 빠름을 추구한다. 구불구불한 옛길과 철길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쓸려나간다. 기술의 진보를 거부할 수는 없어도 국도변의 풍경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기를 소망한다. 




작성: 2022. 12. 12. 

발행: 2023.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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