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에 도착해 입장권을 구매하고 경계 너머로 발을 옮겼다. 바로 서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푸르름을 느껴보고자 발걸음을 늦췄다. 다시 도심으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생각날 만한 경관이라는 걸 알기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아직은 어느 한 순간에 진득하게 눌러앉을 수 있는 내공이 없는지라 다음을 기약하며 소수서원 내부로 향했다.
수 백년간 저 입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희망의 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서원이 제 역할을 잃고 역사적 유적지로서의 기능만 하는 지금에 와서 이 문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문, 쉽게 따라 지을 수 있는 문,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 하는 문이 되어 버렸다. 문턱을 너머 들어서자 역시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 똑같아 보이는 건축물들이 보였다. 각 건물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었지만 현판을 보고서도 한자를 몰라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옛날 많은 이들의 대단한 포부이자 꿈이었을 이 공간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 하는 후손들에 의해 고유한 신비를 잃어버리고 그저 하나의 건출물로서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결국 나는 한자를 읽지 못 하고 건물 앞에 놓인 작은 안내판을 보고서야 건물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어려운 말들이 빼곡히 써진 안내판들을 하나 하나 읽어가며 강학당(강의실)과 직방재(기숙사)를 지났다. 그 안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티격태격하며 함께 생활했을 학생들을 상상해보았다. 상상이라고 해봤자 성균관 스캔들이나 구르미 그린 달빛과 같은 퓨전 사극에서 본 장면을 각색에서 떠올리는 정도일 뿐이다. 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름 역사공부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사를 머리로 배운 적은 있어도 가슴으로 배운 적은 없어서 결국엔 아리송한 표정만 지으며 서원을 빠져나왔다.
소수서원은 누가 언제 창건하였고 어느 왕 때 사액서원이 되었고 어떤 유명인이 배출되었는지까지 외워야 할 정도로 한국사를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서원이다. 그래서 막연히 문제집에 적인 글로서만 소수서원을 접한 나는 소수서원을 수 십 개의 강의실이 줄지어 있고 커다란 도서관과 기숙사가 있는 규모 있는 학교로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둘러보니 몇 걸음 걷지 않아 끝날 정도로 아담한 서원이었다. 이 작은 곳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던 학생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옆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좋은 터를 고르고 골라 자리잡았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답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소수서원을 나오면서 만난 이 연못(탁청지)이 더 특별해보였다. 어느 맑은 날 서로를 이곳에 빠뜨리며 장난을 치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주변을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했으리라. 그들이 이곳에서 위로를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소수서원과 선비촌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멋진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번쩍번쩍한 회색보다 이렇게 때가 탄 모습이 더 멋있다. 다리 주변으로 곧게 서있는 소나무와 뒤쪽으로 살짝 보이는 기와집, 그리고 적당한 높이의 산이 어우러져 계속 보고 싶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비장한 다리를 건너면 장엄한 풍채로 서있는 기와집이 나올 것 같지만, 사진에서처럼 반짝이는 간판을 단 식당들이 나온다. 나도 아침부터 굶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청국장과 비빔밥을 고민하다가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 청국장 냄새가 옷에 배면 곤란했기 때문에 비빔밥으로 주문했다.
커다란 은색 쟁반에 비빔밥과 국, 각종 반찬이 나왔다. 대학교 앞에서 싸게 먹던 밥집이 생각났다. 밥을 비빔 그릇에 털어 넣고 학창시절의 추억도 한 숟갈 곁들여 싹싹 비벼 먹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잘 차려준 밥상을 남기고 가게 될까봐 미리부터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웬걸 국까지 다 비웠다. 청국장이랑 비슷하면서도 청국장보다는 진하지 않은 국이 특히 맛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청국장을 시킬 걸 그랬다.
밥을 혼자 먹을 때마다 밥을 혼자 먹지 못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번에 혼자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도 혼자 가냐며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나도 그동안 혼자 다녀야 하는 상황에 내던져졌기 때문에 혼자 다닐 수 있게 된 것 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며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의문이 든다. 만약 그들이 아무에게도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목매며 살아야 하는 삶에 환멸이 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혼자 밥을 먹지 못 해 굶고, 혼자 영화를 보지 못 해 참고, 혼자 여행을 하지 못 해 좁은 세상에만 갇혀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때 가서 혼자사는 연습을 시작할 셈인가. 그럴 바엔 지금부터 혼자 여기 저기 다녀보고 이것 저것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혼자 다니는 일은 정말 별게 아니고 편하다. 한 번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세상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하면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선비촌은 실제 선비들이 살았던 곳은 아니고 선비들이 살았던 집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재현한 곳이라고 해서 여타 다른 ‘~문화단지’들 처럼 옛날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멘트 기와집을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오랜 세월만이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고풍스러운 느낌까지 완벽히 재현해 놓았다. 정말 그 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손때가 탄 것 같은 나무기둥과 홀로 비바람을 견딘 것만 같은 기와까지. 정말 제대로 해놓아서 생각보다 꽤 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