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에서 나와 부석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인터넷 지도에 표시된 버스정류장 위치에 왔다. 그런데 여기, 버스정류장이라는 표지판이 없다. 내가 서있는 곳의 맞은 편에는 사진에서처럼 버스정류장처럼 보이는 곳이 있지만 이쪽은 안내판조차 없는 인도다. 심지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인도. 휴대폰 배터리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지만 다시 지도를 켜서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여기가 맞다고 나왔다. 다음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라도 알면 마음이 편하련만 실시간 버스정도 시스템도 지원되지 않는다. 기세 등등하게 혼자 떠난 여행은 어기서 막을 내리는 건가. 막막하다.
어디 앉지도 못 하고 멍하니 서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다 보니 오래 전에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5년 전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예정되었던 기차가 예고도 없이 취소되고 내 손에 쥐고 있는 거라고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휴대폰과 출간된 지 3년은 지난 너덜너덜한 안내책자 그리고 신용카드 한 장뿐이었던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된 김에 밀라노 구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에 안내책자를 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생겼다. 머물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각종 호스텔과 민박집 주소를 따라 도시의 끝과 끝을 다 돌아다녔지만 오래된 안내책자에 나와 있었던 숙소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남은 선택지는 호텔뿐. 내 돈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지원으로 여행을 다니는 마당에 팔자 좋게 호텔에 묵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호텔에서 묵는 것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그 날 밤 울상인 얼굴로 호텔 이불 속에 들어가 울음을 참다가 결국엔 그동안의 모든 서러움이 터져버려서 한바탕 울어버렸다. 자꾸만 길을 잃어버리는 나, 자꾸만 고장나는 휴대폰, 자꾸만 바닥나는 잔고를 탓하면서도 결국엔 신용카드가 최고라고 깨달았던 것 같다. 그 때 그 기억을 되새기며 거의 50분을 가만히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딱 1시간이 되면 콜택시를 부르자고, 나에겐 신용카드와 현금이 있고 이건 내가 스스로 번 돈이니 괜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하며 기다렸다. 다행히도 결국엔 버스가 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버스가. 마침내.
부석사에 도착해서 말로만 듣던 ‘부석사 가는 길’에 올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까지 종종 들었던 한국사 과목의 EBS 최태성 선생님은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설명하면서 항상 이 부분을 강조하셨다. 시험이 끝나고 부석사에 꼭 가보되, 올라갈 때는 절대 뒤를 볼아보지 말아라. 오르고 오르다 보면 딱 힘들 때 쯤 그 끝에 부석사 무량수전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내려올 때는 양 옆으로 주욱 이어지는 가로수길을 감상하며 내려와라. 마침 부석사를 다녀온 친구에게 저 말을 들려줬더니 크게 공감하길래 기대에 부푼 참이었다.
올
라
간
다
올
라
간
다
계
속
올
라
간
다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감탄한다. 뜬금없지만 오버워치 테마맵으로 쓰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참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또
올
라
간
다
마침내 무량수전이 보인다!!!!!!
ㅎㅎ 정작 무량수전 사진은 사람이 많아서 못 찍었다. 마음 속에 간직하는 거로...ㅎㅎ
대신 부석사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부석(떠있는 돌)’은 찍었다. 내가 본 돌 중에 가장 신비로운 돌이었다. 마치 꿈에 나오는 것만 같은 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돌 주변의 세상이 휘휘 말려들어갈 것만 같은 돌.
떠있는 돌을 지나면 석불과 그 밑에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조각들이 있다. 인간의 고민과 소원이야 다 고만고만 해서 이 작은 조각과 살포시 올려진 돌멩이들에 담긴 소원을 얼핏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함부로 단정짓고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히 마음을 내뺐다. 고만고만한 염원에 설킨 사연과 진심은 감히 두루뭉술하게 개념화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 것이다.
구경을 마치고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내려왔다. 고즈넉한 사찰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단체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다. 그래도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게 되어 음악을 들으며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버스 시간 때문에 그 마저도 충분히 즐기지 못 했다는 게 두 번째로 아쉬웠던 부분이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휴대폰 배터리도 다 닳은 상태로 꼼짝없이 2시간을 버텨야 했기 때문에 엉덩이를 털어내고 일어났다. 버스가 더 자주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