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도대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p.9)
1.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디자인으로 뒤덮인 세상에 살고 있다. 나 역시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게 이쁘고 멋있고 이런 표면적인 부분을 좋아하기는 쉽지만, 디자인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귀찮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도대체 디자인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시대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만이 반드시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미래와 과거의 좁은 틈 사이에 서 있다. (p.9)
2. 디자인하면 애플이 떠오른다. 애플은 디자인을 모두의 일상으로 가져왔다. 심지어 애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혁명으로 기억된다. 기술의 진보를 삶의 진보로 끌어왔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디자인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혁명 또는 진보만이 시대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혁명과 진보는 인간의 창조성의 부산물이다. 시대를 발전시키는 진보란 것은 인간의 창조성과 통찰력이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 그 현재는 아주 짧은, 이미 인식하기도 전에 미래에서 과거로 지나가버리는 시간이지만, 그 좁은 틈이 우리가 살아가는 무대이다. 그러니까 현재라는 무대는 미래와 과거라는 거대한 시간을 이어주는 무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 무대 위를 살아가기 위해 미래와 과거라는 역사를 통찰해야 한다. 즉, 현재는 인류 온 역사를 통찰하는 무대이자 시점이다. 그러므로 진보란 이러한 특별한 시점 안에서 통찰력을 통해 발현되는 창조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 행위로서의 디자인을 언어화하는 것도 사회와 마주하는 디자인 행위의 하나로 생각한다. (p.10)
3. 디자인은 다양한 행위를 포함한다. 보통은 소비자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디자인을 물건이나 형태로 접한다. 그러나 물성을 넘어서 이미지나 다양한 매체로 접하는 것들도 디자인이다.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나 인터넷 쇼핑몰의 홈페이지나 심지어 방향을 알려주는 도로 표지판도 모두 디자인이다. 그리고 하라 켄야처럼 디자인을 주제로 책을 쓰는 것도 하나의 디자인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일상의 디자인적 발견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디자인은 생활 속에서 태어나는 감수성이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생활문화가 그러한 감수성을 키우려면 구미의 생활문화를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높은 생활 의식이 먼저 성숙했어야 하지만, (p.19)
4. 디자인은 기술과 짝을 이룬다. 때로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간의 이견으로 대척점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디자인과 기술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확연히 다른 성격을 띤다. 기술은 감정의 여지가 들어갈 수 없는 이성적인 성격이라면, 디자인은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감성적인 영역이다.
감수성은 기술처럼 어떤 공식이나 방법론을 습득하는 것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감수성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우려면 더 좋은 생활 속에 자신을 노출시켜 의도적으로 생활 의식을 흡수하고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 의도적으로 생활을 의식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감수성에는 이유가 있다.
포스트모던은 디자인 역사의 전환점이 되지는 못한다.
조형적인 경향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의도된 작은 기회체계였으며 모드mode(유행)와 같은 것이었다. 낡은 모드를 몸에 걸친 사람들의 사진이 종종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것은 유행이라는 가공의 신호에 사회 전체가 순종하고 있는 기묘함 탓이다. 21세기에 살펴본 포스트모던도 이와 비슷한 웃음을 자아낸다. (p.27)
5. 길게 보았을 때 기존의 것에 대한 싫증이나 자연스러운 변화는 사조가 되지만, 오직 변화를 위한 의식적 변화는 웃음거리가 된다. 각 분야에는 클래식이라고 하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궁극의 단계가 있다. 클래식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늘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다. 어떤 경향을 우리가 처음 마주했을 때 그것이 클래식이 될 것인지 유행에 그치고 말 것인지, 또는 잠깐의 이슈에 지나지 않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슈가 된다 해도 그것이 유행이 되는 것은 어렵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꽤 오래 소비되는 하나의 유행이 된다 해도 그것이 클래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은 유행을 넘어선다. 그리고 역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지나 미래에도 여전히 살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클래식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인다. 이것이 사조, 즉 사상의 흐름이다. 마치 큰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레 흐르는 것처럼 역사라는 물줄기에 시대의 클래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어짐이다.
6. 소비시대의 디자인은 소비를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의도적 변화에 가까웠다. 새로운 디자인은 기존의 것을 보다 더욱 낡아 보이도록 만드는데 집중했다. 결국 먼 훗날 그 시대의 디자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웃음을 짓게 하는 원인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의도적으로 웃음 짓게 만들어 문제를 제기하는 해학적 디자인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디자인 역시 하나의 클래식이 되지는 못한다. 디자인 클래식이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과거의 것으로부터 문제를 찾아내 미래에 영감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디자인 가구 분야에서는 미드 센추리 모던이라 불리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20세기 중반의 디자인 제품들은 디자인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디자인 클래식이라 불린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가치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묘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똑같은 창조성이다. 우리는 이미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수많은 문화가 쌓여가는 가운데에 살고 있다.
그것들을 자각시키고 활성화하는 것이 '인식을 살찌운다.'라는 것이며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태나 소재의 참신함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틈새로부터 평범하면서도 은근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발상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독창성이야말로 디자인이다. (p.33)
7.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면 늘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낀다. 조금 더 참신한 것, 약간 더 새로운 것을 찾아 머리를 쥐어짠다. 그래서 남들과는 다른 것을 만들어 돋보이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창조성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성이라기보다 차별을 위한 악전고투일 뿐이다. 지나고 보면 결과적으로 디자이너와 디자인 결과물 모두 애만 썼을 뿐 남는 것은 없다.
8.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먼저 감동에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감동은 어떤 것을 마주했을 때 생각을 깊게 느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에만 집중하면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거나 괴롭게 하는 것도 감동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감동이다.
긍정적인 감동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인식을 넓히도록 도와준다. 이런 감동은 사소함에서 온다. 익숙해서 눈치채지 못했던 불편함을 개선하면서 느끼는 감동이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작은 가치를 일깨워주는 감동이다. 이것이 디자인의 가치이고 목적이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디자인이다. (p.36)
9. 그래서 디자이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가야 한다. 삶을 천천히 바라보고 오감을 이용해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생활 속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