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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koon Nov 27. 202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마무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무엇인가 비참한 일이 일어날 때면 우리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벌을 받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일상적인 인과론적 설명을 넘어서는 설명을 찾게 된다. 참담한 사건일수록 객관적으로 보면 가당치도 않은 의미를 가져다붙이게 되고, 심리적 운명론으로 빠져드는 경향도 강해진다. (p.229)


1. 우리는 마주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일 대부분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상관관계만 있을 뿐이다. 벌어지는 사건에 관련이 있어도 무엇이 원인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착각한다.


 보기 드문 희귀한 사건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되면 1분 후에도 잊을 수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모든 이유를 갖다 붙이고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건이 드물지만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유는 없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클로이와 헤어진 것 때문에 친구와 지인들이 진부한 동정의 말을 수도 없이 해주었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몰라. ...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야. ... (p.238)


2. 때로는 진부한 동정이 진절머리 날 때가 있다. 하지만 겪어보면 안다. 그것만이 유일한 위로라는 것을. 그리고 지나 보면 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놀람은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예상하게 되었고, 따라서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의 슬픔에 취하게 되었다. (p.245)


3. 우리는 그럴 줄 몰랐다고 말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예상했다. 다만 예상한 모든 것 중에 어떤 것이 사실일지 몰랐을 뿐이다. 사랑은 절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의 끝은 대부분 예상 가능하다. 그래서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놀라지 않는다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슬픔의 주인공이 되기에 적절하다. 슬픔에 취하게 된다는 것은 다층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슬픔에 취하게 되면 아프지만 동시에 스스로 주인공이 된다. 그 시간은 이기적이어도 되고, 누군가를 마음껏 비난해도 상관없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다. 모든 노래 가사가 내 감정을 적은 것 같고, 모든 영화가 나를 모티프로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성격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기분 나쁘게 여기는 측면들에 집중했다. 그녀는 결국 이기적이었다. (p.246)


4. 끝까지 그녀에 대한 실체는 철저히 나의 인식 안에 존재한다. 그녀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내가 보고자 하는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그 견딜 수 없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p.250)


5.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거짓말조차 불완전한 자신을 사랑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자기 방어의 한 방법이다.


나는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살았다. 그 말은 내 삶을 그녀와 함께했던 삶과 관련지어서만 생각했다는 뜻이다. ... 현재는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제가 되었다. ... 미래라는 것은 더욱더 비참한 부재 상태를 의미할 뿐이었다. (pp.252-253)


6. 끝난 연애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모른다. 그 연애가 시작하기 전에는 환상적인 미래만 있었는데, 연애 중에는 서로의 과거와 오지 않을 미래만 그리다가, 끝난 후에는 비참한 과거만 남게 된다.


7. 우리는 연애와 상관없이도 때때로 공허함을 느낀다. 공허함은 그 공간을 채우고 있던 부재를 뜻한다. 애초에 비워져 있었다면 공허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이 채워져 있다가 사라졌다는 증거다. 사람의 마음은 풍선과 같아서 채워진 것에 따라 쭉 늘어난다. 하지만 풍선과 다른 점은 줄어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허함으로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늘어난 마음, 다시 말해서 사라진 무엇의 크기와 같다.


연애가 끝이나 비참한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상대가 내 마음을 그만큼 채우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비워둘 수가 없다. 마음은 모든 물이 모이는 바다와도 같아서 늘 무엇인가로 채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워낼수록 잡다한 것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의 마음은 좋은 것들로 늘 채워야 한다. 사랑이나 소망이나 믿음이나 기쁨 같은 것으로. 그래서 사랑이 떠나가면 비참한 부재 상태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나는 잊기 시작했다. (p.256)


7.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과거를 잊게 된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 그렇다기보다 그 시간 동안 다른 경험들로 자신을 채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잊을 수 있다.


"왜 우리는 그냥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p.262)


8. 모든 것이 지나고 보면, 과거는 늘 쉽게 기억된다. 무엇이 그렇게 서로를 어렵게 만들었을까. 왜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왜 우리는 그냥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지혜와 지혜로운 인생은 크게 다르다. (p.269)
우리가 바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현자가 되지는 않았다. (p.270)


9. 보통 연애상담을 잘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연애를 잘 못한다. 드라마나 연애프로그램을 보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생각하다가도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타인의 감정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잔잔한 호수 같지만 본인의 감정에 닥치면 그것은 도무지 헤아리기 어려운 파도와 같다. 그래서 사랑은 늘 어려운 듯하다.


사랑은 비합리적인 만큼이나 불가피했다. 불행히도 그 비합리성이 사랑을 반박하는 무기는 되지 못했다. (p.271)


10. 사랑만큼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행위 혹은 감정이 또 있을까.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이익이 있는지 명확하지도 않고, 때론 서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비극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순간에는 결국 겁쟁이에 불과했다. (p.272)


11. 사랑은 완벽함에서 시작한다기보다 오히려 불완전한 실패 투성이로 시작하는 것일지 모른다. 동화 속의 백마 탄 왕자 혹은 황금 마차를 탄 공주를 만나는 것보다, 부족한 서로를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해 서로를 채워주며 그렇게 하나가 되는 사랑이 단단하고 성숙한 사랑이 아닐까.


end. 나는 그동안 사랑과 행복을 뒤로 미루어 왔다. 그 결과 사랑과 행복은 늘 그만큼 나에게 멀어져 있었다. 내일은 언제나 내일인 것처럼 그렇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여러 핑계를 대지만 결국 그 겁쟁이가 되는 것이 두려운 또 다른 겁쟁이가 되어 사랑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적인 모든 상태를 내려놓아야 또는 뛰어넘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랑은 어떤 의미로는 더욱 동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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