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행동에서 철저함을 추구해 나가다 보면 그곳에 독자적인 미의식을 실현한 상품군이 출현한다. (p.118)
1. 멋있고 단단하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들을 보면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철저하고 일관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하라 켄야가 디렉팅 하는 '무인양품'이 좋은 예시이다. 무인양품은 브랜드가 없는 브랜드를 표방하지만 그 어떤 브랜드보다 강력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무인양품에는 없는 것이 없다. 그런데 하나같이 전부 무인양품스럽다. 심지어 무인양품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라도 '만약 무인양품이 만들 '무엇'이라면 이럴 것이다.'라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것은 무인양품이 행동의 철저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일방적으로 정보를 발신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p.125)
메시지가 아닌 빈 그릇을 내보이며 오히려 수용자 측이 그것에 의미를 담아냄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는 경우도 있다. (p.127)
2. 커뮤니케이션은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디자이너의 일방적 메시지가 아닌 사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제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어떻게 수용자가 디자인을 활용하는지까지가 디자인의 완성인 것이다. 그리고 가득 찬 메시지뿐 아니라, 무언의 표정만으로도 뜻이 통하듯이 비어있는 디자인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현재라는 장소에서 반 발 앞의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조금 더 먼 미래를 통찰하는 시점에 서고 싶다. 미래가 존재하는 동시에 과거로부터 전해진 막대한 문화적 축적도 나에게는 미지의 자원이다. (p.139)
3. 과거와 현재, 그리고 먼 미래를 통찰하는 시점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내일의 날씨조차 예측하기 힘든 현재에, 먼 미래를 내다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불확실한 미래만큼 과거와 현재도 불확실하다고 인지하고 그 불확실성에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 하라 켄야가 말하는 통찰력이 아닐까.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일본의 자동차는 일본인의 자동차에 대한 욕망의 수준 그 자체이다. (p.148)
브랜드는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하는 나라와 그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p.150)
품질은 좀 더 종합적인 품질, 말하자면 품위나 품격으로 형용할 만한 성질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주방장이 아니라 고객이기 때문이다. (p.151)
4. 때론 유행하는 브랜드와 문화 콘텐츠를 비평하며, 그것을 소비자 혹은 대중의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이 불쾌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평가일까. 만약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떠한 감정변화를 느꼈다면, 그것은 나와 브랜드 혹은 문화 콘텐츠를 동일시해서 그런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선택한 브랜드가 나를 구성하는 이미지의 일부가 됐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서 '아무거나'라는 선택지는 위험하다. 스스로의 욕망에서 좋은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찾아가는 행위는 중요하다. '아무거나'를 소비하면 기업들이나 창작자들은 '아무거나'를 만들게 되고,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개인의 소비와 선택은 중요하다. 문제는 만들어내는 이들이 아니라 소비하는 우리에게 달렸다.
공간 자체의 품질 ... . 이를 위해서는 주택 공간을 생활에 맞추어 '편집'한다는 합리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건축물의 구조는 '뼈대'라고 하며 실내의 생활공간은 인필infill'이라고 한다. 이 '인필'을 자유자재로 편집하는 능력이 계발되어 간다면 아직 일본의 주택 공간도 기대할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p.155)
5. 각 나라마다 보편적인 주택구조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와 빌라를 비롯한 공동주택이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구축 아파트의 경우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복사 붙여넣기한 듯 동일한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는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집을 달라진 생활에 맞춰 편집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마감재의 유행이 아니라 공간 분할이나 활용까지 편집해야 한다는 발상이 그래서 중요하다.
집 구조가 하드웨어라면 집 안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마감재만 바꾸는 것은 사실 변화가 아니다. 빈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라이프스타일)를 편집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일상은 미의식을 키우는 온상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상품 하나하나도 실은 학습으로서 효과가 있으며 우리는 매일 이것들을 통해서 교육받는다. (p.162)
6. 우리의 일상에는 다양한 정보가 도처에 깔려있다. 미의식도 그중 하나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품은 누군가가 디자인 한 제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품에는 디자인 의도가 있으며, 무심코 지나친다 해도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미의식을 학습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상당히 번잡한 문화의 집합소였으리라. 그 전부를 받아들이고 혼돈을 떠안음으로써 반대로 일거에 그것들을 융합시키는 극한의 하이브리드에 도달하였다. 즉 극도의 단순함 곧 제로 위에서 모든 것을 지양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p.172)
7. 때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타인의 관점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자국의 문화를 분석하는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 디자인 철학에 관한 책들을 보면 그들의 문화와 디자인을 분석하고 통찰하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무인양품을 비롯한 넓은 브랜드부터 한 분야에서 극단에 닿아있는 좁고 오타쿠스러운 브랜드들까지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디자인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반추하는 계기도 된다. 한국적인 디자인과 문화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과 만난다는 것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에 의해서 어느새 자연의 풍요가 주변에 충만해진다. (p.179)
8. 풍요하다는 것은 디테일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자연은 풍부하다. 어느새 싹이 돋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들어 낙엽이 진다. 매 순간 변화를 느낄 수 없지만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풍부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문맥 속에서 일본 문화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일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p.182)
9. 우리는 세계의 평가에 얼마나 의존하는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의도는 고유성을 살리면 세계에서 인정받는다라는 뜻이겠지만, '한국적인 것은 그냥 한국적인 것이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우리 스스로 좋아하면 그것으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이고 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전통과 한국 고유의 문화성, 미래의 확장성의 균형은 열린 마음으로 모두가 생각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베니야 무카유'라는 여관 ...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쓸모없고 도움이 될 성싶지 않은 것일수록 실제로는 풍요로운 것 (p.184-185)
뛰어난 것은 반드시 발견된다.
무카유는 ...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그 여운을 반추하게 만드는 ... (p.190)
10. 어쩌면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기는 것이야 말로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