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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4)

<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by Lakoon
테크놀로지는 진화할수록 자연에 접근해 간다. (p.199)


1. 소니에서 '아이보'라는 로봇 강아지가 처음 발매했을 때의 일이다.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명령을 못 알아듣고 사람의 말을 무시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버그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부분이 실제 강아지 같다며 좋아했다고 한다(물론 후에 패치가 됐겠지만). 로봇의 불완전함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자연에 접근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인공물을 보고 정말 진짜 같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면을 보고 말하는 것일까. 완벽한 휴먼로이드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인간형 로봇이 완벽하게 진화할수록 사람에 가까워진다면 의도적으로 불완벽 해진다는 뜻일까, 무작위적으로 불확실성의 성격을 가진다는 뜻일까.


일부러 몸을 움직여 찾아가지 않으면 절대 체험할 수 없는 정보를 그곳에 만드는 것이다. (p.203)


2. 모바일 온라인 시대에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딱 한 가지 체험형 오프라인 경험이다. AR, VR의 목표는 실제 같은 체험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대체하기는 아주 먼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구현한다 해도, 실제로 그곳으로 이동하며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체험은 구현할 수 없다. 오프라인의 체험은 그곳을 찾아가는 시점부터 시작이다.


낡은 것 속에 숨어 있지만 오늘날에 더욱 중요해진 가치관을 뽑아내 미래를 전하는 메시지로서 사용하는 그것이 신선하다. (p.205)


3.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날로그가 지니는 인간적 가치 때문일 것이다. 아날로그를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세대들마저 그 오랜 감성을 추구하는 현상을 통해 기술 발전에 비해 사람의 가치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것(문제)을 개선으로 향하게 할 수 있을지 한발이라도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끈기를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디자인을 기능 시키고 싶다. (p.216)


4. 나는 아직도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설렌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이다. 크든 작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디자인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단번에 문제를 바꾸려는 시도의 혁명적이고 강압적인 디자인은 대중의 거부감을 일으킨다. 디자인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용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디자인은 지능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감성과 통찰력이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의식은 사회에 대해서 항상 민감하게 각성하고 있어야 한다. (p.218)


5. 디자인은 감각적인 부분이다. 감각이라는 것은 타고난 성향이라 보이는 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감각 있는 사람들은 감각을 후천적으로 키운 것이라 말한다. 감각이란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감각을 어떤 대상에 대해 느끼는 민감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민감한 정도는 지식의 깊이와 관계가 있다.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세세하게 분류가 가능하고 그것은 곧 민감한 정도가 깊어지는 감각이 되는 것이다.


자연에서 예를 들면, 무지개 색깔은 일곱 가지 색이 상식이다. 과거에는 무지개를 다섯 개의 색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뉴턴이 일곱 가지로 정의한 후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무지개는 최대 207개의 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 200여 개의 색상을 모두 알고 있는 컬러 전문가라면 207 빛깔 무지개로 보일 것이다. 이처럼 결국 우리의 감각은 지식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사회와 사람들의 삶에 대해 민감하고도 폭넓게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 관찰을 함으로써 지식이 늘어나고 이는 곧 감성과 통찰력의 상승으로 나타난다.


디자이너는 본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디자인으로 치료하는 의사와 같다. 따라서 머리가 아프다고 두통약을 원하는 환자에게 간단히 그것을 손에 쥐어 주어서는 안 된다. 진찰을 해 보면 그곳에 중대한 병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 그것을 발견하여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두통약'을 파는 일에 정신이 없는 디자이너는 값싼 두통약이 등장하면 당황하고 허둥거리게 되고 만다.
여하튼 디자이너는 상황으로부터 단절되어 패키지화된 디자인을 공급하는 직능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하는 디자이너의 일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에 어울리는 정보의 형태를 알리고 최적의 미디어를 통해서 그것들을 사회에 유통시켜 나가는 것이다. 낡은 미디어에 집착하는 자세도, 새로운 미디어를 고집하는 자세도 모두 부자연스럽다. (p.220)


6. 디자인이 시각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은 병의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채 환자에게 진통제만 투여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진통제 같은 디자인은 일회성으로 소비되며 점점 더 강하고 자극적인 요소를 요구하게 된다. 더 깊고 천천히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제품이나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 관심이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가장 적절하게 풀어줄 수 있는 도구를 선택하면 된다. 익숙하다거나 새롭다는 이유로 무조건 선택해서도 안되고, 낡았다거나 유행으로 치부하며 선택하지 않아도 안 되는 것이다.


유행과는 반대로 '디자인'이라는 행위의 본질은 하나다. 오늘날 디자이너에게는, 이 본질을 인식한 후 어떠한 형태로 현대 사회에 관여해 나갈 것인가 하는 '자신의 직능과 사회와의 관계'를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개념적 확장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영역으로 시선을 돌려 그것을 각 디자이너가 스스로의 방법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p.222)


7. 왠지 디자인과 유행은 비슷한 말 같다. 적어도 같은 방향의 한 축에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디자인과 유행은 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오히려 유행은 좋은 디자인인지 아닌지 여부와 관계가 없다. 그저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다. 좋지 않은 디자인도 유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좋든 아니든 디자인은 유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좋은 디자인만 오래도록 사회에 남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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