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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마무리)

<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by Lakoon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다루는 것은 '정보'라는 의식이 차츰 뚜렷해지고 있다.
과연 정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가 관여하는 이상, 정보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질'을 높임으로써 커뮤니케이션에 효율이 생겨나고 감동이 발생한다.
'정보 디자인의 골인 지점은 그 사용자에게 힘을 주는 것'
'정보의 품질'을 높임으로써 발생하는 힘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의 이해력을 가속시키는 작용을 한다. (p.225)


1. 디자인은 그 추상적 '정보'를 구체화된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품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적 요소 하나하나가 정보를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많은 제품들에 반드시 설명서가 필요했다. 설명서 또는 전문가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어느새 설명서는 대부분 사라졌다. 바로 디자인이 직관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새로 나온 제품을 쉽게 다룬다. 이전보다 더 기능이 다양하면서도 다루기는 쉬워진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이 정보의 질을 높였다는 뜻이고, 사용자는 그 정보를 쉽게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디자이너의 지성이란 바로 정보를 평가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이며 '정보의 질'을 제어함으로써 만들어지는 힘을 가려내는 눈이다. (p.226)


2. 물론 무조건 쉬운 사용만이 디자인의 목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정보를 쉽게 보여주는 디자인은 유용하다. 정보의 질은 제어한다는 것은 필요한 정보만 남기고 불필요한 정보를 줄이는 디자인적 취사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보의 편집이다. 디자이너는 곧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아닌지 가려내는 감각이 필요하다.


쉬운 이해
디자이너가 할 일은 정보의 핵심을 누구나 섭취하기 쉬운 상태로 친절하게 정리 정돈해 주는 것이다. '쉬운 이해'라는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안다'라는 것과 '알고 있다'라는 것 그리고 '알지 못한다'라는 것에 대해서 먼저 이해한 후 침착하고 냉정하게 '안다'를 실현하는 과정을 모색해 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p.227)


3. 지식에는 세 가지의 상태가 있다. '안다'라는 것은 가장 능동적인 지적 상태다. 지식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그 지식을 바탕으로 행동이나 사고에 적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알고 있다'라는 것은 낮은 수준의 지적 상태로 어렴풋이 개념을 이해했으나 그것을 실제의 사고에 적용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지적 상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중요한 상태는 '알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사실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로는 우리에게 별 유용할 것이 없다. 다만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우리의 사고가 달라질 수 있다. 무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제자리걸음을 한다. 또한, 본인의 무지에 대한 자각뿐 아니라 상대방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지식의 저주'라고 불리는 편견인데 이것은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마치 키오스크라든가 새로 나온 it기기를 그것을 처음 접하는 어른들께 설명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을 당연하게 사용하던 사람에게는 직관적이라고 생각하는 디자인이 그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난해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지식의 저주에 걸렸다면 그가 만들어낸 디자인 제품은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지식의 저주의 산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디자이너는 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 의심을 품어봐야 한다.


독창성
'독창성'이란 이제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신선한 방법으로 정보를 표현하는 것이다. (p.227)


4.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독창성에 대한 강박이 있다. 보다 더 새로운 것, 신선한 것, 특이한 것을 찾는다. 바로 아이디어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방법이나 기술적인 부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독창성은 기술적인 것뿐 아니라 정보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단지 독특한 표현기법이거나, 처음 보는 아이디어만을 내세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오히려 기발한 아이디어보다 그 안에 담고 있는 정보가 중요하다.


디자인에는 '그래서?'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디자인은 실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재미있다. 하지만 그 재미가 익숙해진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그것의 가치를 찾게 된다. 그래서 '그래서?'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5. 재미는 디자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재미 역시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정보를 잘 나타내기 위한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보편적이고 유용한 정보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라는 요소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좋은 디자인 중에는 보편적인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 그전에는 서로 사용하지 않았던 다른 분야의 기술을 섞은 것이 많다.


해학
인간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웃는다. 내용을 파악할 뿐 아니라 그것을 또 다른 각도에서 감상하는 여유를 가졌을 때 비로소 웃음이 발생한다. (p.228)


5.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해외여행 중 한국인들끼리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한글 암호 리뷰를 본 적 있는가? 예를 들어 '솅죵엉젱훈민졍음'을 본떠 받침을 덧붙이거나 쌍자음을 써서 외국인들은 읽지 못하게 리뷰를 쓴다. 이것은 유용할 뿐 아니라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 해학은 고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형태의 근거는 다른 여러 생명과 환경과의 절묘한 균형 속에 있을 것이다. (p.232)


6. 독창성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혼자만 돋보이고자 애쓰게 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독창성은 주변과 어우러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 그리고 인공환경과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후기
디자인이란 이 세상의 어떤 상황에서 필요하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 ... (p.243)


7. 디자인이란 세상, 일상에 대한 질문이다.


디자이너의 '-너'부분은 뛰어난 자질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마치 정원사를 가드너라고 부르듯 디자인의 정원을 청소하거나 손질하거나 하는 사람. (p.245)
지금은 아티스트로서의 나와 연구자로서의 나를 모두 포함하여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종사해서 살아가다 보니 여러 가지 것들을 포함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는 행위도 또한 그 범주에 속할 것이다. (p.246)


8. 디자인 일을 할 때는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스스로 부르는 것에 떳떳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이너는 대단한 감각을 지닌 뛰어난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그만큼 좋아해 왔고 쉽게 접근하면 안 되는 복잡한 전문 분야라고 생각했다.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놀랍게도 거장인 하라 켄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이제는 하라 켄야의 글을 읽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디자인을 통해 봉사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떳떳하게 디자이너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살고 있으니 나는 여전히 디자이너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도 하나의 디자인 제품에 속할 것이다.


end. 디자인의 일상에 대한 질문이고,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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