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이건 뭐,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것을 쓰는 수밖에 없겠다.'
아무튼 가진 것을 죄다 쓸어 모아 얘기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p.131)
1. 무라카미의 일상이라면 늘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리라는 예상은 역시나 환상에 지나지 않나 보다. 역시 그의 입장에서 보면 흔해서 아무런 이야깃거리도 없는 그런 일상, 내가 느끼는 일상과 비슷하려나 싶다. 이렇게나마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위로일지 모른다. 그의 작품을 나열하고 보면 나로선 닿을 수 없는 높은 산과 같지만 그의 고민을 들여다보고 걸어온 발자취를 하나하나 찾아보면 평범한 시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평범한 시작에서 비범한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요소겠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것을 쓴다.' 모순 같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아무것도 쓸 게 없어서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과 비교하자면 그것만이라도 '쓰는 것'은 천지 차이다. 솔직히 아무것도 없는 것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그냥 아무것도 쓰지 않는 쉬운 선택을 버리고, 텅 비어있는 스스로의 하찮은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괴로움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점은 나중에-만일 나중이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조금씩 고쳐나가면 됩니다. (p.132)
2. 결점을 그냥 지나치라는 뜻이 아니다. 완성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시작이 없으면 완성도 없다는 뜻이다. 결점을 따지는 것은 완성 이후의 문제다. 완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기준을 논하자면 역시 끝이 없지만..
한정된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혹은 무한에 가까운-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p.133)
'써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조합 방식의 매직만 깨친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p.134)
3. 기발한 소재와 아이디어에 집착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들은 그 작가의 평범한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사소함에 있지 않은가. (가끔은 나의 일상을 하루키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써야 할 것,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다는 뜻이 된다. 아무도 내 글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덕분에 자유롭게 글쓰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무명이라는 단어에는 자유롭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묵직한 소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내측에서 스토리를 짜낼 수 있는 작가라면 도리어 편할지도 모릅니다. (p.136)
4. 가끔은 내가 특이하고 흥미로운 해외의 도시나 환경에 놓여 주변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쓸거리가 많았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나의 글쓰기 실력(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보다 환경 탓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 역시, 익숙해지면 평범해진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가진 시선의 문제다.
외부에서 소재를 찾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모두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외부 소재는 내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나온 창작물은 어떤 작품이라기보다는 뉴스 기사나 기록에 가까울지 모른다. 또한, 외부 소재에 기대면 창작의 동력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힘들더라도 내면에서 소재를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소소한 경험에서라도 인간은 방법 여하에 따라 깜짝 놀랄 만큼 큰 힘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p.136)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p.137)
5. 어쩌면 널려있는 소재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고정된 시선과 발상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누가 들어주겠어라는 하나의 자기 의심이라는 필터가 너무 촘촘한 탓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데 뭐, 이렇게 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잖아. 그게 뭐가 나빠?' (p.139)
6.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이것은 자존감과도 관련이 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라는 뜻인데, 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감각'이라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잘 파악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는 정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높게 감각할 수 있게 되면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데 뭐 어쩔 것인가'라는 자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그 상태로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가질 수 없는 이상적인 상태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실력은 늘리면 그만이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p.140)
7. 세계와 일상에서 원석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다. 꼭 갖고 싶은 능력이다. 그런 눈을 가지게 됐을 땐,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질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