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p.150)
1.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요즘 시대와 잘 맞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인생 역전이나 대박 같은 단어가 우리의 시대와 잘 맞아 보인다. 재테크나 투자 열풍, 복권 당첨금 소식 등 주변을 둘러싼 소식들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인생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의미 있게 다가오는 말이다.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다. 하지만 그 티끌을 매일 일정량만큼 모은다면 그것은 복리가 되어 정말 태산이 된다. 특히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는 무형의 것들은 티끌 모으듯 매일 규칙성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습관이나 감정이나 건강에 관련한 것들이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p.150)
2. '즐기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긴다'는 것은 오해하기 쉽다. 내가 느끼기에는 '노력'이란 '어떻게든 붙잡고 늘어지는 끈기'를 말한다. '즐기는 것' 역시 붙잡고 늘어지지만 차이점은 '푹 빠져 몰입하는 것'이다. 결코 놀면서 한다라거나 대충대충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시간을 사용한다 해도 몰입의 차이에 의해서 퍼포먼스는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 노력은 '양'만 있다면, 즐기는 것에는 '질과 양' 모두 있다.
설령 '이건 완벽하게 잘됐어. 고칠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책상 앞에 앉아 아무튼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됐다'라는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 (p.158)
3.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의 원고를 타자기도 없던 시절, 8번이나 수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인쇄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교정을 하고 있었다 하니, 이것이야 말로 완벽한 문장이 없다는 위안과 예시가 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또한 어떤 문장이 인상 깊게 다가와도 그것을 암송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게 된다. 문장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 것이다. 어쩌면 글 쓰는 작가는 완벽한 문장을 쓰는 기술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그리는 예술가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p.161)
4.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들이 있다. 운동이나 글쓰기가 그렇다. 어떤 글이든 뜯어고치자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더 좋은 글이 되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당장 고친 문장이 최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과정이 쌓이면 글은 좋아지게 되어있다.
그 작품을 써낸 시점에는 틀림없이 그보다 더 잘 쓰는 건 나로서는 못 했을것이다, 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점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p.165)
5. 후회는 쓸모없는 것이다. 차라리 합리화하는 것이, 후회의 괴로움에 빠져지내는 것보다 낫다. 물론 합리화도 자기 위안 외에는 쓸모가 별로 없지만, 후회는 그것조차 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좋은 것이다.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의도한 아쉬움은 변명을 만들어내기에 자신을 속이면 안 된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 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 (p.167)
6. 어떤 분야에서는 시간만이 증거가 된다. 그것은 특히 전문적인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은, 넓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더욱 그렇다. 어느 누구도 시간을 건너뛰어 이룰 수는 없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p.169)
7. 결국 '시간 싸움'이라는 뜻은 자신의 의지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단지 그것뿐입니다.
부족한 역량은 나중에 노력해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잃은 기회를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p.170)
8. 디자인 작업을 하든, 글을 쓰든, 무엇을 하든,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무한정 늘린다고 해서 퀄리티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최적의 퀄리티와 비례하는 시간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라는 것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니 아쉬운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현재의 내가 성장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실감'을 믿기로 하십시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그런 건 관계없습니다. 글을 쓰는 자로서도 또한 그걸 읽는 자로서도 '실감'보다 더 기분 좋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p.171)
9. 감이라는 것. 이것은 자신에 대한 긍정과 함께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감각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바라보는 시선과 몰입하려는 노력이 더해진 부분이 더 크다고 한다. 즉 배울 수 있고 키울 수 있는 하나의 역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