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p.180)
1. 참을성이란 이 시대에 남아있는 미덕 중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일지 모른다. 지름길이 있다면 영상을 2 배속하고, 드라마는 몰아보기, 요약본을 보며, 시간을 아끼고자 이것을 하며 저것도 하는 멀티태스킹을 한다. 묵묵히라는 것은 내 하루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 그것을 견디기 어려운 이유는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하루키의 말대로 하루라는 기한을 가지고 불확실한 변화를 기대하는 대신 당장의 행위에 초점을 두면 매일의 일상은 그럭저럭 묵묵히 할만한 것이 되는 것 같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는 것. (p.187)
2.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의 명확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꿈을 일찍 꽃 피우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꿈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꿈이란 명사보다는 동사에 가까운 듯하다.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매일 해야 하는 동작 쪽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꿈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찾는 것, 이것이 꿈을 찾고 이루는 방법 아닐까.
강함이란 타인과 비교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강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강함을 말합니다. (p.189)
3. 우리는 왜 비교라는 것을 할까. 아마도 그것이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간편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비교의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결과 또한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적당한 만큼의 필요를 찾는 것은 타인과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만이 알아낼 수 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각자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p.201)
4. 세상에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성공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관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진리라는 것이 각자의 삶 속에 적용되었을 때는 사람의 수만큼 변형되고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진리라는 것은 하나이지만, 방법 또는 형태적인 면에서는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인 방법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경험이 나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쓴다,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p.259)
5. 자기 자신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가 닿을까.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p.264)
6. 글쓰기는 글쓴이 자신에 대해 관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소재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와 자신에 대한 관찰이라는 활동이 별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는 없다. 오히려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스스로를 관찰하기 위해서 글쓰기를 먼저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 위해 자신을 먼저 관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글을 쓰다 보면, 또는 자신을 관찰하다 보면 다른 행동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end. 나는 이 책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대신 '직업으로서의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무엇인가 창작한다는 의미에서 작가와 디자이너 사이에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직업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개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면 분명 이 책에서 말하는 소설가라는 직업과 상통하는 것이 존재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 크게는 목적의식이 필요하고 작게는 매일 정해진 양을 채울 수 있는 즐거움과 '어쨌든 해낸다'라는 의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