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p.114)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p.115)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p.116)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p.117)
1. 역사를 살펴보면 심심치 않게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는 조국 오스트리아의 나치화와 세계 자유 질서가 무너져가는 당시의 상황을 겪으며,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절망 속에 1942년 부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안네의 일기>로 알려진 안네 프랑크 역시 안타깝게 전쟁이 끝나기 한 달전 유대인 수용소에서 1945년 3월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한 달만,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슬픔이 있다. 조금만 더 견디었다면, 더 용기를 가졌었다면 보다 밝은 세상을 마주 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미래였지만, 그들의 미래를 과거의 역사로 알고 있는 나의 무지이자 오만이고 착각일 뿐이다. 그들에게 현실은 절망의 연속이었고, 고통의 끝없는 굴레였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더 어두워질 거라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선과 정의가 악을 이기기는커녕, 오히려 악이 더 우세하게 지배하고 장악하는 불의의 세상에 살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 이것은 우리의 오늘과도 다르지 않다.
2. 세상이 잘못되어 간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삶이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모습은 일시적으로 인식된다. 언젠가는 일시적인 비정상을 끝내고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한이 있는 일시적인 삶에서는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입대를 하게 된 이등병의 경우에는 전역 후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한을 알 수 없을 때에 생긴다. 사실 우리의 삶 대부분은 이런 상태에 있다. 직장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늘 장애물이 존재한다. 지나고 보면 그 장애물이 고작 몇 주, 몇 달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일을 겪는 중에는 끝없는 인고의 시간일 뿐이다.
3. 비정상적인 일시적 삶의 예는 모든 세대에 걸쳐 나타난다. 젊은 세대의 경우 어린 시절 가졌던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이 있다. 현재 풀리지 않는 장애물을 일시적인 비정상적 삶이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인생이 생각대로 잘 풀린다는 것은 사실 판타지에 가깝다.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은 비정상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상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문제 덩어리인 일상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결국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다가 번아웃 또는 우울증이라는 정신적 고통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현실의 정상적인 괴로움을 직시하지 않으면 삶의 의지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은퇴 후 삶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노년의 인생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죽음, 그러나 그 기한을 알 수 없는 삶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직업 자체를 인생의 의미라고 믿어온 사람들은 그 직업에서 은퇴하였을 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유유자적하는 은퇴의 여유로움을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으로 여길 수 있다. 곧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과거 속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는 과거란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정말 죽을 정도로 괴로웠던 기억이 영움담으로 바뀌고 참을만했던 것으로 무뎌지게 된다. 이와 반대로 평안한 현실은 오히려 괴로움이 된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힘과 용기를 주지만 과거에 빠져사는 것은 또 하나의 도피일 뿐이다.
4. 그러나 일시적이라 생각하는 고통의 삶, 다시 말해서 내가 생각했던 무난한 계획을 성취하며 사는 가상의 삶과 대비되는 고난의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직시해야 한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정신적으로 더욱 단단해지고 이전의 연약했던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만이 깨달을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 타인은 절대 상황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정확히 공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기회는 본인만 알아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 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p.118)
5. 희망적인 미래는 오늘의 힘이 된다. 희망에도 종류가 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고 믿는 것도 희망이고, 언제까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것도 희망이다. 두 희망의 차이는 추상적이냐 구체적이냐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일상을 쳇바퀴 돌듯 관성에 젖어 있으면서 언젠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의미 없는 희망이다. 예를 들면 이 책에도 나오는 크리스마스 희망이 있다. 1944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상당히 많은 유대인 수용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전쟁이 끝난다거나 자신들이 풀려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망상에 가까운 희망이었다. 현실적 변화 없는 추상적 근거였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믿었고, 크리스마스가 지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고 그렇게 쓰러졌다. 우리가 희망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헛된 희망은 살아갈 힘을 빼앗아 간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p.120)
6.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쓰라고 권한다. 실제로 일기를 쓰면 감정이 누그러진다. '불안'은 무지에 대한 고통이다. '걱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통이다. '고민'은 능력 부족에 대한 고통이다. 이런 고통들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원인과 해결 방법을 알아내고,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안도감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말로 표현하기보다 글로 쓴다는 것은 희미하던 것을 조각한다는 뜻과 같다. 고통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p.123)
7. <스타트 위드 와이 Start with why>의 저자 사이먼 시넥은 비롯해 각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업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왜'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말한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124)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p.125)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p.130)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p.131)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p.132)
8. 말은 쉽다. 하지만 행동은 어렵다. 우리의 인생 전체를 '삶'이라고 했을 때, 이 '삶'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p.142)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p.150)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p.151)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p.152)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 (p.157)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 (p.158)
9. 소중한 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p.159)
10. 자연은 늘 변한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다. 인간도 그렇다. 늘 머물러 있는 사람은 없다. 퇴보하거나 진보한다. 삶의 주어진 환경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 퇴보하고,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해결하며 자유를 추구하면 진보한다. 이것이 풍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역동성이다. 늘 머물러 있으려 하면 그것은 곧 표류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고민보다는 권태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중략) 이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중략) 자동화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가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애석한 것은 그 중 많은 사람이 새로 얻게 된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데 있다.
'일요병'을 예로 들어 보자. 일요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주일을 보내고 내면의 공허감이 밀려올 때, 자기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이 겪는 일종의 우울증이다. (중략)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p.161)
11. 과거의 사람들은 미래가 조지오웰의 <1984>처럼 될 것이라 두려워했지만, 현실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되었다. 재미에 중독되어 삶에 무관심해진 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도파민이 유행어가 된 것처럼 쉴새없이 주어지는 자극에 익숙해진 나머지 내면의 공허함을 다루는 법을 잊게 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