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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마무리)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by Lakoon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중략)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p.163-164)


1. 영어단어를 외우다 보면 가산 명사, 불가산 명사라는 개념을 알게 된다. 셀 수 있는 것과 셀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Money 돈이 셀 수 없는 불가산 명사라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아니 돈을 세지 못한다니, '세뱃돈을 받고도 돈을 세고, 현금 사용할 때도 돈을 세고, 계좌에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세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이 셀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셀 수 있는 것은 지폐와 동전일 뿐, 그것을 포함한 '부'라는 하나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래전 광고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부자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 부자라는 개념이 추상적이라는 것을 안다. 상대적이라는 것도 알고,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무엇보다 부자라는 것은 허상적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는 것이 꿈, 삶의 의미, 목표가 될 수는 없다.


2.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오늘의 할 일에 충실하고 현재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작은 일이라도 회피하지 않고 선택과 책임을 갖는 것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p.164)


3. 후회는 늘 있다. 오래전, 아니 단 5분 전을 후회할 때도 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의 그때가 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그때로 돌아가하고 싶은 일을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그때 했어야 하는 일을 지금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인생 2회 차 3회 차 삶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마치 2회 차 인생인 것처럼 살아보려 노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p.165)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자아실현은 자아 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써만 얻어진다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p.166)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p.166)


4. 기분과 태도는 별개라는 주제의 책들이 꽤나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분은 태도에 영향을 준다. 그것이 본능이고 기본 설정값에 가깝다. 아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배가 고프면 울고 보채고, 기분이 상하면 물건을 집어던진다. 그러다가 기분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는 게 아이들이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기분과 태도를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어떻게 보면 성숙해진다는 의미는 기분과 태도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는 뜻인 것 같다. 우리의 기분은 수동적이다. 주변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태도만큼은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물론 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매번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태도를 기분과 분리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 희생의 의미 같은 -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p.169)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시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략) 만약 그 시련이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중략)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인간이 취해야 할 의미 있는 행동이다.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 학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170)


5. 고행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바는 행복하든 시련을 당하든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은 행복해도 불행해도 인생의 의미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p.172)


6. 우연은 삶의 일부분이다. 강물같이 흐르는 일생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 스쳐가는 하나의 지점이다. 그러나 그 우연을 목적지라고 여기고 머물거나 또 다른 우연을 바라면 진정한 목표인 드넓은 바다를 만날 수 없다. 우연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 좋은 것은 그 한 번으로 족하다. 우연은 우연이다.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궁극적인 의미는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을 초의미super meaning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 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의미보다 심오하다. (p.176)


7. 로고테라피는 인생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거대한 시련에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인생의 과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은 수많은 현재의 가능성 중에서 끊임없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언제나 인간은 좋든 싫든 자기 존재의 기념비가 될 만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p.179)
쾌락은 어떤 행위의 부산물이자 파생물로 얻어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p.181)


8.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돈을 비롯해서 인기나 명예 등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표들은 사실 추상적인 부산물이자 파생물이다.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추구하고 있다. 유명 유튜버, 베스트셀러 작가, 돈 많은 건물주가 되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각자의 삶에서 추구하는 구체적인 별개의 행위를 통해서만 (그것이 꼭 이루어진다는 말은 아니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p.191)


9. 누군가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왜 사람들은 스스로 도서목록을 만들지 못하고 대형 출판사들이 대신 골라주는 것을 읽느냐고 말했다. 19세기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어려워했나 보다. 생각해 보면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성경을 직접 읽지 않고 교황과 카톨릭 사제들이 알려주는 대로 믿었다. 이만큼 능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p.199)
행복은 얻으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유가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인간적인 현상인 웃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웃게 하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면 된다. (p.200)
의미는 일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 (p.209)
인간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p.209)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 의지를 본다. (p.220)


end.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이 감상문을 쓰고 있는 필자는 더더욱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이 말하듯 우리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매 순간 그렇게 용기 내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마도 시련뿐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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