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 비비언 고닉
거리 공연은 상점에서, 버스에서, 우리 각자의 아파트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p.13)
1. 영화 '트루먼 쇼'에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한다. 각자 맡은 배역과 각본에 맞춰 일상을 만들어낸다. 가끔 나의 삶도 하나의 쇼가 아닐까 상상해 볼 때가 있다.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버스와 승객들. 상점과 이웃들이 사실은 연기자라면. 그냥 시시한 망상일 뿐이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하면 재미있다.
가끔 상상이 깊어지면 나에게만 세상이 억지로 까다롭게 구는듯한 각종 시련들이 어쩌면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만나야 하는 불가피한 에피소드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상상이 나쁘다기보단 긍정적일 때가 많다고 느낀다. 나는 훈련병 때 이런 생각을 하며 견뎠었다. 입대를 기준으로 겨우 며칠 사이에 자유를 빼앗긴 이상한 현실에 마주했을 때 일이다. 갑자기 머리를 까까밀고 교관의 허락 없이는 고개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고 차렷 해야만 하는 모습이 마치 병정놀이하는 것 같았다. 특히 훈련에 익숙해져 병정 장난감처럼 다 같이 한 몸으로 움직일 때면, 그것은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졌다. 훈련병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연기자 같았다.
오래전 어느 배우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그 강연의 주제는 배우라는 직업은 상황과 배역에 몰입하는 사람인데, 그 역할에 몰입하는 것보다 공연이 끝났을 때 다시 자신의 본모습으로 빠져나오는 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연기를 했던 가상의 자아가 본래의 자아를 대신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기는 사실 가짜인데, 그 가짜에 몰입하면 진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연기자만 공연을 할까?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공연을 한다.
2. 정말 연기를 잘한다 싶은 배우들은 맡은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버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딱 정도에 맞는 연기를 할 때 우리는 배우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가짜임에 분명한데 진짜처럼 보인다는 것. 반대로 현실에서 튀는 사람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어딘가 어설프고, 어딘가 오버스럽다. 우리가 기대하는 역할에 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불평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맡은 역할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현실에서 기대하는 것은 공연이다.
연극에서 배우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에 관계없이 주어진 대본에 충실해야 한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대본에 '웃는다'라는 지시가 있으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어야 한다. 공연 직전까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도 대본에 '슬퍼한다'라는 지시가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의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로 그것이다.
3. 우리는 세상이 거대한 공연장이길 기대한다. 상점에서 친절한 주인을 기대하고, 친절하고 신속한 버스 기사를 바란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부모, 자식, 형제에게 바라는 행동이 있다. 우리는 역할에 맞는 일상의 공연을 기대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바라는 것이 비현실적인 공연일 뿐 아니라, 자신도 그 공연에 참가하는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잊고 산다.
4. 가상의 세계인 연극에서는 누군가가 대사를 실수를 한다 해도 다른 배우들은 공연을 이어나간다. 실수가 있다고 공연을 포기하는 배우는 프로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현실의 세계인 삶 속에서 대본대로 기대대로 흘러가는 공연을 바라면서 동시에 자그마한 실수에도 좌절하기 일쑤다.
소문과 소식을 접하다 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완벽한 공연을 하는 듯 보인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공연에 속에서 나 혼자 대본을 숙지하지 못해 실수를 남발하는 기분일 때가 많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낯선 곳에서 헤매다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역할이 나의 역할 아닌지 싶기도 하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고, 힘들어도 주먹을 다시 뻗어보는 그런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 공연이라면, 완벽한 공연은 아니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나는 나의 공연을 이어간다.
'어디서든' 꽃을 피우려면 사람은 주변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낼 만큼 뛰어나거나, 속한 환경에 맞춰 살 만큼 겸손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라면 뜻이 맞는 최소한의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p.24)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