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즐기기
독서라는 취미는 쉽지 않다. 주기적으로 서점도 가고, 늘 손 닿는 곳에 책들이 있지만, 나에게 어려운 취미인 건 확실하다. 틈나면 읽으려 가지고 다니는 책이 가방에 늘 한두 권쯤 있음에도 막상 책을 펴는 일은 정말이지 드물다. 독서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오히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나에게 숙제나 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핑계를 대자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간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과 스트레스가 없어야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서보다 쉽고 자극적이고 재밌는 것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러던 와중에 요즘 다시 독서에 흥미를 찾았는데 계기는 이렇다.
얼마 전 슬램덩크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마침 소장 중이던 슬램덩크 만화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묵혀놨던 다른 책들도 보기 시작했다. 만화책으로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는 게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상관없는 거 아닌가. 여하튼 나는 독서에 재미를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맘 편히 보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나에게 책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고, 나는 독서를 통해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첫 장을 펴는 것 자체가 큰 일로 다가와 스트레스였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독서를 방해했고, 독서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평소에 어떻게 읽으면 더 쉽고 효율적 일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자료를 찾아본다. 이런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이번에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정독이든 속독이든 스킬은 나중이고, 독서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겠다는 것.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뜬금없지만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도쿄 여행을 좋아하는데 이 도시는 지금껏 4-5번은 갔다 온 듯하다. 평소 집돌이지만 여행 가면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니기에 오히려 서울보다 도쿄 맛집이나 거리를 잘 알정도이다. 이렇게 같은 도시를 여러 번 여행하면 느끼는 점이 있다. 처음 갔을 때 도시는 낯설다. 그래서 대부분 관광지나 유명한 곳들만 다니게 된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여행을 가면 그 도시는 이전 여행의 기억에 더해 점점 선명해지고, 나중에는 골목의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듯 여행지를 한번 가본 사람과 여러 번 다녀본 사람의 정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책도 그렇다. 같은 책이라도 한 번만 읽은 사람과 여러 번 본 사람의 디테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한 권을 정독해서 한 번만 읽겠다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처음 여행 온 도시를 한 번에 모두 알겠다는 생각이 착각인 것처럼, 처음 보는 책을 한 번에 정독해서 온전히 기억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설레도록 즐길 수 있는 도시와 닮은 책을 찾아서 여행하는 것, 이게 나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게 나의 새로운 독서법이 될 것 같다.